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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화 및 미얀마 박물관 (1편)

테트 우 마웅(영화제작자, 촬영사)

Thet Oo Maung(스테판・미누스(Stephen Minus))라고도 불리는 그는 열정으로 가득한 인도주의자이며,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화가, 또한 사진작가이자 촬영사이다. 그는 모함을 당하거나, 잊혀지거나, 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촬영 기술로 그들의 소리를 높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을 통해서 내전·지뢰·장애자·아동 교육·아동 건강 관리·여성의 역량 강화· 디지털 권리·불법 벌목·인클로저·환경 파괴 등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그는 미얀마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지하 인권 영화제 “원스텝 필름 포럼 (One Step Film Forum)”을 추진 중에 있다.

원스텝 필름 포럼

‘원스텝 필름 포럼’은 미얀마에서 영화를 통하여 인도적 배려를 홍보하는 취지의 포럼이다. 정의를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원스텝 필름포럼’은 폐단을 적발하기 위한 호루라기를 부는 장소와도 같은 곳이다. 영화를 통해서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평화와 화해’를 외치며, 인권과 정의 그리고 사회운동에 대한 지식을 공유하고 있다. 2021년 2월의 첫날, 군정부는 정권을 남용하여 새롭게 선정된 전국민주연맹정부의 정권을 앗아갔다. 많은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군사 쿠데타에 항의하였다. 전국에서 평화 시위를 진압한다는 명목하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여성과 아동들 마저도 피해를 입었다. 이에 ‘원스텝 필름 포럼’은 영화의 힘을 빌리어, 인권과 자유 그리고 정의의 옹호를 위해 지속적으로 투쟁하고 있다.


1961년,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난 미얀마(버마)는 초대 수상 우-누 (U Nu)씨에 의해 불교국가로 선포되었다. 1961년 8월29일. 우-누씨가 직접 추진하던 국가 종교 촉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어,이 법안으로 인해 불교는 미얀마의 국교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는 우-누씨가 출마할 때 한 약속이기도 했다.  버마(미얀마)가 독립되자, 일부 종족들은 새로 건국된 나라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반군단체 중에 가장 유명한 단체는 대부분이 기독교인들로 이루어진 카렌족(Karen)이었다. 또 하나의 단체는 버마(미얀마)  공산당으로, 정부는 이들을 부처님을 안 믿는 야만인으로 보고 있었다. 국교가 선포된 1961년, 카친 독립군(약칭 K.I.A)는 반기를 들고일어났다. 카친족(Kachin)의 대부분이 기독교 신자였기 때문이다. 그 후부터, 미얀마 정부는 주요 정책의 하나로, 민중들의 단일적이고 공통적인 신앙으로, 불교를 중심으로 통합하여 민심을 모으려 했다. 한편으로는, 국교를 존중해야 한다는 깃발을 높이 들고 다른 소수 종족의 신앙, 즉 기독교인, 힌두교인, 이슬람 교인들에게 여러모로 탄압해왔다.

하나의 예로, 수천 년 동안 미얀마에서 함께 공존해온 여러 종교들의 유물에 대한 보존과 유지를 정부는 항상 등한시해왔다. 때에 따라서는 이러한 증거물들을 일부러 파괴하였다. 이러한 행동을 많은 학자들은 “버마(미얀마) 종족화”라고 하였으며, 버마(미얀마) 박물관은 정부에게 완전히 장악당하고 있었다. 보존되어야만 하거나 전시돼야 하는 다른 종교의 유물들은 등한시하며, 각 박물관마다 자기 방식대로 정부의 국교 정책을 지지하였다.

 

미얀마의 다원 종족

미얀마는 다양한 종족으로 이루어졌는데 정부의 공식 승인을 받은 종족만 135개 종족으로, 이들을 다시 8대 “주요 종족”으로 구분한 것이 버마족·친족·카친족·카렌족·카야족·몬족·라카인족·샨족이다. 

이는 언어 또는 민족적 귀속관계에 따라 구분된 것이 아니고 지역에 따라 구분된 것이다.

그 밖에도 승인받지 못한 다수의 종족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인구수가 가장 많은 화교계 버마인과 판타이인(합해서 총인구의 3%),인도계 버마인(총인구수의 2%),영국계 버마인 및 그루카인(Gurkha) 등이 있다. 후자인 두 종족은 공식적으로 인구 통계는 없었으나, 비공식 추정에 따르면52,000명의 영국계 버마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외부에도 약 160만 명이 있다고 한다. 버마(미얀마)정부가 공식 승인한 135개 종족의 명단에 속하지 않는 종족은 아래와 같다:

·          영국계 버마인

·          화교계 버마인

·          판타이인

·          인도계 버마인

·          타웅타인(Taungtha)

·          로힝야인

·          구르카계 버어마인/네팔계 버마인(미얀마인)

미얀마 종족은 상당히 다양하며 서로 상이한 문화와 종교적 유산을 갖고 있지만, 정부의 공식적인 승인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종족의 역사문물이나 문화, 전통 유산 등은 주요 박물관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종교와 함께 남겨진 유력한 증거물이나 문화 유적은 고의적 파괴 또는 은밀히 감추어졌으며, 기타 종교 문물에 대한 일부 안내비 등은 불교 문화재라는 이름하에 전시되었다. 11세기에 세워진 힌두교의 브라흐만 신을 모신 이사원은 고대의 사암탑으로 널리 사랑을 받은 바간의 난 파야르 사원이다. 선명하게 벽에 새겨진 머리 셋 달린 신상이 보이는데, 정부와 종교 지도자들은 이를 불교사원이라 하고 있으며, 의도적으로 일부 역사유물을 파괴하여, 미얀마의 신앙 역사적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

1.	바간의 난 파야르탑의 브라흐만신상 (사진제공: Thet Oo Maung)

1. 바간의 난 파야르탑의 브라흐만신상 (사진제공: Thet Oo Maung)

주목할 만한 최근의 사건은 2012년과 2013년 사이에 일어난 만달레이 지방의 린진곤(Lin Zin Gone) 묘지 철거이다. 만달레이시 정부부처는 만달레이 아마라푸라 (Amarapura)에 있는 고대 묘원 린진곤에 세워진 이슬람사원과 묘지를 철거했다. 2012년 5월 31일 만달레이 신문를 통해 밝혀진 린진곤 묘원 철거 통보로, 정부 당국을 비롯한 각 부처별 담당주관자들은 공식적인 항소서를 전달받게 되었다. 또 한편, 관련 각계 각층에서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철거 반대 청원에 서명했다. 이 묘원에는 영국의 식민 전에 버마(미얀마) 군주를 섬겼던 유명한 비불교 인물들이 남긴 풍부한 역사적 유물들이 보존되어 있었다. 불도저는 이슬람교도, 아르메니아계 및 유럽계 후손의 역사적인물들의 많은 묘비를 무너뜨렸다. 성 아비스 샤 후세인 니(Aabis Sha Husain Ni), 람마와티(Rammaawati)우누 총독 (주석:U라함은 존칭으로, 버마는 성씨를 사용하지 않음. 우-누 수상과는 다른 인물.) 그는 작가이며 시인이었는데, Boethaw Phayar국왕에게 과감히 이슬람교에 대한 설법을 하여 역사적으로도 유명하다. 이와 같은 많은 버마(미얀마) 이슬람교의 유명인들이 묻혀 있었다. 철거행위는 영국 점령전  버마(미얀마) 군주를 섬겼던 비불교신자들의 유적들을 지우려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인근에 거주하던 사원 승려의 도움 하에, 몇몇 묘비들을 구조하여, 사원에 보존하였다.

2. 조각난 이비석은 왕조시대 때 만달레이에 살았던 한 아르메니아인의 것이다. 린진곤 묘원에서 구조하여 보존. (사진 제공: Tayza Hlaig)

2. 조각난 이비석은 왕조시대 때 만달레이에 살았던 한 아르메니아인의 것이다. 린진곤 묘원에서 구조하여 보존. (사진 제공: Tayza Hlaig)

3. Min Doneera 왕조 때 만달레이에 거주했던 아르메니아인의 버려진 묘비. 비문은 버마어와 아르메니아어로 쓰여 있다. 린진곤 묘원에서 구조하여 보존. (사진 제공: Tayza Hlaig)

3. Min Doneera 왕조 때 만달레이에 거주했던 아르메니아인의 버려진 묘비. 비문은 버마어와 아르메니아어로 쓰여 있다. 린진곤 묘원에서 구조하여 보존. (사진 제공: Tayza Hlai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