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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HRM-ASIA PACIFIC 이벤트

뉴스
2022-05-23

테트 우 마웅(영화제작자, 촬영사) Thet Oo Maung(스테판・미누스(Stephen Minus))라고도 불리는 그는 열정으로 가득한 인도주의자이며,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화가, 또한 사진작가이자 촬영사이다. 그는 모함을 당하거나, 잊혀지거나, 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촬영 기술로 그들의 소리를 높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을 통해서 내전·지뢰·장애자·아동 교육·아동 건강 관리·여성의 역량 강화· 디지털 권리·불법 벌목·인클로저·환경 파괴 등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그는 미얀마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지하 인권 영화제 “원스텝 필름 포럼 (One Step Film Forum)”을 추진 중에 있다. 원스텝 필름 포럼 ‘원스텝 필름 포럼’은 미얀마에서 영화를 통하여 인도적 배려를 홍보하는 취지의 포럼이다. 정의를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원스텝 필름포럼’은 폐단을 적발하기 위한 호루라기를 부는 장소와도 같은 곳이다. 영화를 통해서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평화와 화해’를 외치며, 인권과 정의 그리고 사회운동에 대한 지식을 공유하고 있다. 2021년 2월의 첫날, 군정부는 정권을 남용하여 새롭게 선정된 전국민주연맹정부의 정권을 앗아갔다. 많은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군사 쿠데타에 항의하였다. 전국에서 평화 시위를 진압한다는 명목하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여성과 아동들 마저도 피해를 입었다. 이에 ‘원스텝 필름 포럼’은 영화의 힘을 빌리어, 인권과 자유 그리고 정의의 옹호를 위해 지속적으로 투쟁하고 있다. 1961년,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난 미얀마(버마)는 초대 수상 우-누 (U Nu)씨에 의해 불교국가로 선포되었다. 1961년 8월29일. 우-누씨가 직접 추진하던 국가 종교 촉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어,이 법안으로 인해 불교는 미얀마의 국교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는 우-누씨가 출마할 때 한 약속이기도 했다.  버마(미얀마)가 독립되자, 일부 종족들은 새로 건국된 나라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반군단체 중에 가장 유명한 단체는 대부분이 기독교인들로 이루어진 카렌족(Karen)이었다. 또 하나의 단체는 버마(미얀마)  공산당으로, 정부는 이들을 부처님을 안 믿는 야만인으로 보고 있었다. 국교가 선포된 1961년, 카친 독립군(약칭 K.I.A)는 반기를 들고일어났다. 카친족(Kachin)의 대부분이 기독교 신자였기 때문이다. 그 후부터, 미얀마 정부는 주요 정책의 하나로, 민중들의 단일적이고 공통적인 신앙으로, 불교를 중심으로 통합하여 민심을 모으려 했다. 한편으로는, 국교를 존중해야 한다는 깃발을 높이 들고 다른 소수 종족의 신앙, 즉 기독교인, 힌두교인, 이슬람 교인들에게 여러모로 탄압해왔다. 하나의 예로, 수천 년 동안 미얀마에서 함께 공존해온 여러 종교들의 유물에 대한 보존과 유지를 정부는 항상 등한시해왔다. 때에 따라서는 이러한 증거물들을 일부러 파괴하였다. 이러한 행동을 많은 학자들은 “버마(미얀마) 종족화”라고 하였으며, 버마(미얀마) 박물관은 정부에게 완전히 장악당하고 있었다. 보존되어야만 하거나 전시돼야 하는 다른 종교의 유물들은 등한시하며, 각 박물관마다 자기 방식대로 정부의 국교 정책을 지지하였다.   미얀마의 다원 종족 미얀마는 다양한 종족으로 이루어졌는데 정부의 공식 승인을 받은 종족만 135개 종족으로, 이들을 다시 8대 “주요 종족”으로 구분한 것이 버마족·친족·카친족·카렌족·카야족·몬족·라카인족·샨족이다.  이는 언어 또는 민족적 귀속관계에 따라 구분된 것이 아니고 지역에 따라 구분된 것이다. 그 밖에도 승인받지 못한 다수의 종족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인구수가 가장 많은 화교계 버마인과 판타이인(합해서 총인구의 3%),인도계 버마인(총인구수의 2%),영국계 버마인 및 그루카인(Gurkha) 등이 있다. 후자인 두 종족은 공식적으로 인구 통계는 없었으나, 비공식 추정에 따르면52,000명의 영국계 버마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외부에도 약 160만 명이 있다고 한다. 버마(미얀마)정부가 공식 승인한 135개 종족의 명단에 속하지 않는 종족은 아래와 같다: ·          영국계 버마인 ·          화교계 버마인 ·          판타이인 ·          인도계 버마인 ·          타웅타인(Taungtha) ·          로힝야인 ·          구르카계 버어마인/네팔계 버마인(미얀마인) 미얀마 종족은 상당히 다양하며 서로 상이한 문화와 종교적 유산을 갖고 있지만, 정부의 공식적인 승인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종족의 역사문물이나 문화, 전통 유산 등은 주요 박물관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종교와 함께 남겨진 유력한 증거물이나 문화 유적은 고의적 파괴 또는 은밀히 감추어졌으며, 기타 종교 문물에 대한 일부 안내비 등은 불교 문화재라는 이름하에 전시되었다. 11세기에 세워진 힌두교의 브라흐만 신을 모신 이사원은 고대의 사암탑으로 널리 사랑을 받은 바간의 난 파야르 사원이다. 선명하게 벽에 새겨진 머리 셋 달린 신상이 보이는데, 정부와 종교 지도자들은 이를 불교사원이라 하고 있으며, 의도적으로 일부 역사유물을 파괴하여, 미얀마의 신앙 역사적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

2022-05-23

문화부 산하의 박물관은 민족 박물관이나 기념관으로 된 국립박물관, 고고학 박물관, 지역문화 박물관이 있다. 일부 종교박물관, 사립박물관 및 역사박물관은 다른 기관에 부설된 곳으로, 미얀마 문화자산의 보존에 책임을 지고 있다. 오늘날에는 정부부처나 민간부문을 통해 여러 형태의 박물관들이 더욱 많이 등장하고 있다. 미얀마는 문화정책에 있어, 국가의 정체성과 문화자산을 보호하고, 민족의 자부감과 긍지심을 높이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문화정책에 의한 문화부의 사명은 "문화를 통한 국가 홍보"이다. 미얀마의 유·무형 문화재는 매우 풍부하고 다양하다. 미얀마의 문화유산은 주로 미얀마 국립박물관(양곤)과 바간에 있는 고고학 박물관에서 공동으로 보존하고 있으며, 지역적 문화박물관 그리고 문화부 산하의 각 고고학박물관에서도 보존하고 있다. 가장 오래된 고대 궁전과 장경각(불경 등을 소장함)을 비롯해, 미얀마가 독립하기 전에 세워진 주요 박물관으로는 바간에 있는 고고학 박물관이 있다. 미얀마 박물관의 근대 발전과정은 다음과 같다. 미얀마 독립 후 4년이 지나, 1952년에 문화부가 설립되고 최초의 국립박물관 (양곤) 및 여러 개의 기타 박물관 등이 생기게 되었다.

2022-05-23

저자 소개:Patporn (Aor) Phoothong Patporn (Aor) Phoothong 선생님은 평화박물관 및 아카이브에서 일하시며, 평화교육에도 전념하고 계십니다. 최근에는 태국의 남부를 주제로 한 평화박물관 건립에 대한 타당성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1976년 10월 6일 대학살 사건의 박물관 프로젝트와 남부 박물관 및 아카이브 프로젝트에 대한 공동 발기인으로서, 박물관과 아카이브의 힘을 빌려, 갈등과 충돌을 변화시키고자평화구축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Aor선생님은 2011년부터 평화와 정의를 추진하는 박물관과 아카이브의 일을 하면서 API 펠로우십 프로그램(아시아 지식인을 위한 Nippon Foundation Fellowships)을 통해,"평화와 화해를 향한 걸음: 일본과 필리핀의 평화박물관 사례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10월 6일 박물관 프로그램 소개 10월 6일 박물관 프로젝트는 4인 단체로 창립된 것으로, 진보적 출판사의 편집자, 영화 촬영사 겸 감독, 그리고 건축가와 연구원에 의해 2019년 7월에 설립되었습니다. 박물관 프로젝트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태국의 과거 및 현재의 정치적 폭력에 대해 소통하고 토론할 수 있는 사회정치적 공간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는 전시회, 세미나 및 워크숍을 통해 태국의 관객을 비롯하여 태국 사회에 유관 정보 및 증거들을 보여주면서 질문과 비판을 제기하여, 궁극적으로는 유죄 불처벌 문화를 질책하는 것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유언비어들이 춤추는 나라 태국. 진실을 파악하기란 어려운 일인데, 만약 그 거짓들이 진실에 가깝게 들릴 때, 도대체 무슨 일이일어났는지에 대한 상상을 하게 합니다. 과거의 정치적 폭력을 폭로하는 박물관 프로젝트에 제가 참여할 기회가 생기자, 저는 전시회가 어떻게 사실을 제시하고 대중들과 이야기하며, 그들이 질문할 수 있고, 비판하며, 마침내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느낄수 있게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1976년 10월 6일. 태국정부는 전 독재자의 귀환을 평화롭게 항의하던 법정대(탐마삿 대학)의 학생들과 민간인들을 학살했습니다. 공식 통계에 의하면, 46명이 사망하고 167명이 부상했으며, 3,0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체포되었습니다. 그 후, 1978년에 특수 사면 법안이 통과되었고, 관련인사들, 특히 가해자인 경찰, 국경 순찰대원, 준 군사부대 및 극우단체가 석방되었습니다. 대학살이 발생한지 43년이 지난  2019년 7월. 유죄 불처벌의 문화(culture of impunity)에 도전하기 위해, 저희는 박물관 프로젝트인 ‘10월 6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박물관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과거 및 현재의 정치적 폭력과 그와 관련된 물품들로, 사회 정치적 학습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전시회·세미나·영화 또는 기타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대중들이 직접 질문하고 소리를 내며 비판하도록 하여, 태국의 열악한 정의와 뿌리깊은 유죄 불처벌 문화에 도전하였습니다. 왜 우리가 이 사건을 심도 있게 논의하거나 조사할 수 없는지 알아내는 데 저는 20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태국은 오랫동안 국가안보를 최우선으로 하는 군사 정부가 통치해 왔습니다. 사법부와 행정부의 불법행위는 물론, 유죄 불처벌 문화로 태국 정부는 시민들의 기억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과거의 정치적 폭력은 민감하고 금기시되는 주제가 되었으며, 일부 사람들은 과거를 잊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가장 최근의 2014년 쿠데타는 태국인들이 군정부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게 하였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과거의 정치적 폭력과 정부의 책임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으며, 공개토론 내용 중 하나가 1976년 10월 6일의 대학살이었습니다. 첫 번째 전시 "Prajak / Payan"("목격자")가 2019년 10월 5일~6일 진행되었습니다. 전시품목은 오로지 3개로, 1976년 10월 6일총에 맞아 숨진 남학생의 몸에서 벗겨진 청바지 한 벌·총알로 구멍 난 나팔·붉은 문,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1976년 9월 24일.붉은 문에는 교수형 된 두 개의 시신이 걸려 있었습니다. 우리는 간략한 설명과 함께 이 물품들을 들어내었습니다. 이것들이 진실을 말해주고 있었고, 폭력에 대한 증언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서게 되면, 이 3가지 물품들이 관객들을 맞아 주면서, 그들과 솔직한 대화를 시작하고, 사실을 대변하며, 묵묵히 진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제가 전시장 안에서, 전시장을 오가는 인파들을 바라보며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3가지 물품을 보러 오는 건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들 이어서 일까? 아니면 진실을 알고 싶어서 일까? 이들이 1976년 10월 6일 일어난 사건에 대해 알고 싶어서 일까, 아니면 우리와 같은 생각과 고민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일까?” 하며 생각하였습니다. 두 번째 전시 "Kwean"("서스펜션")은 2020년 10월 1일부터 10일까지 전시되었으며, 이번에는 AR 기술을 사용하여 관객과의소통을 시도했습니다. 1976년 10월 6일 아침에 일어난 사건에 주목했습니다. 이날. 사남루앙(Sanam Luang) 로얄광장의 주변에 최소 5명이 나무에 매달려 죽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학살이 일어났던 현장에서 전시를 하였으며, 당시 현장에서 찍은 사진들을 통한 AR 기술의 힘을 빌려 관객들은 사건의 인물들이 겪은 교수형이나 총살을 당한 시신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태국 정부가 자신들이 한 일을 국민들이 잊어버리고 살인에 대한 책임도 묻지 않기를 원하고 있을 때, 그들에게 도전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사건의 증거와 물품들을 재현하여 대중들에게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학살현장의 원위치에서 가해자·피해자의 신원·폭력의 규모·국가가 범행한 죄를 지적하였으며, 전시를 통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과거에 있었던 폭력을 목격한 증인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저는 관객들, 특히 10대들이 1976년 10월 6일의 대학살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으며, 그들이 온라인상의 지식을 통해서 "10월 6일 의 다큐먼트"아카이브, 인터넷 및 출판물을 통해서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고, 인원들과 그리고 다른 관객들과의 소통을 위해서 전시회를 찾았습니다. 한편으로는 태국의 사회 정치적 맥락이 사람들의 기억과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지만 현재의 사회와 정치적 맥락에서도 사람들이 진실을 찾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는 박물관의 역할이 평화의 문화를 촉진하고, 미래의 잔학한 행위를 방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10월 6일 사건의 박물관 프로젝트는 여전히 진행 중에 있으나, 실제로 박물관이 설립되기 까지는 머나먼 길을 가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프로젝트의 진행과정에서 박물관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는데, 예를 들어: 더 많은 물품을 수집하고, 전시회, 워크숍, 세미나를 기획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부단히  (1) 질문을 제시할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며, 모르고 있었던 것은 무엇인지. 데이터, 증거 및 정보들은 어디에 있으며, 누가 사건에 연루되었고, 이해 관계자들은 누구인지? (2) 다양한 그룹(가해자·피해자·방관자 및 기타)으로부터 얻은 정보·증언·기억 및 자료를 수집하고,  (3) 정보, 증언, 기억 및 자료를 관객과 함께 소통할 것이며, (4) 정의의 구축을 위해 박물관 및 아카이브 기록의 문화를 강화할 것입니다.

인권논문
2022-05-23

저자 - Andy Archidian 안디 선생님은 인도네시아 국립대학교 사회정치 과학부 사회학과의 조교수이며, 무니르 하우스 인권 재단의 책임자이십니다. 무니르 인권 박물관에 대하여 무니르 인권 박물관은 2013년 동부 자바의 바투시에 설립된 ‘무니르 하우스 인권 재단’으로, 무니르 변호사가 태어나고 자란곳이며, 원래 이름은 무니르 하우스 인권 박물관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 국민, 특히 청소년들에게 평화를 사랑하고 인권을 존중하며 관용과 평등의 원칙을 수호하는 인권교육을 심어주기 위해 박물관이 건립되었습니다. 소개 1998년 5월 수하르토의 새로운 질서(New Order)체제가 무너졌습니다. 수하르토 장군이 30년 이상 집권한 후 물러나면서, 하비비(B.J. Habibie) 부대통령이 뒤를 이어 인도네시아 정치를 민주적으로 이끄는 데 전념했습니다. 새로운 질서가 무너지면서, 인도네시아에는 여러 정당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였고, 새롭게 다당제 정권 시대가 오늘날의 민주화 과정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구정권의 뿌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그 잔재가 지금의 정치에도 뿌리 깊게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1965년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인도네시아를 구하기 위한 핵심 세력으로 군사를 들고 있는데, 특히 육군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 현대에 있어 인도네시아에 대한 역사적 개념이 되었습니다. 이 역사적 내러티브는 1970년대에 이르러 군사가 정치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이후에 더 광범위하게 확장되었습니다. 내러티브는 더 이상 공산주의 운동을 진압하는 군사의 성공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독립이 네덜란드와의 투쟁에서 군사의 주요 성과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반식민주의의 운동가들이었던 스카르노(Sukarno), 하타(Hatta), 사리르(Sjahrir)와 같은 이들의 역할은 점점 잊히고, 독립전쟁속에서 활약했던 군부대의 영웅사들이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캐서린 맥그리거(Katherine McGregor, 2007)는 20세기 현대 인도네시아 역사 내러티브에 대한 연구에서 군사의 역할을 강조하는 공식 역사의 구축이 신질서시대에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묘사하기 위해, 이를 "제복을 입은 역사"라고 적절하게 설명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박물관이 진보적이고 해방적인 행동주의를 위한 용도가 아니고, 권위주의적 통치자들의 반동적인 거짓 역사의식을 위해 지배 체제에 의해 사용될 수도 있다는 단서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뒤의 배후 인물은 훗날 신질서 시대에 교육부 장관이 된 학자이자 군사 역사가인 누그로호 노토수산토(Nugroho Notosusanto)씨가 있었습니다. 그의 지휘하에 인도네시아 주요 도시에 박물관과 기념물들이 세워져, 군부대의 기여와 중요한 역할을 대중에게 상기시켜 주며 역사적 이야기를 뒷받침하게 되었습니다. 망각에 대한 투쟁 새로운 질서 체제하의 박물관은 더 이상 일반적으로 정의된 "예술적, 문화적, 역사적 또는 과학적 가치가 있는 문물을 보존하는 곳"(옥스포드사전의 정의)이 아니라, 정권의 역사적 역할을 정당화하는 권력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1998년 개혁 직후부터, 이것을 파헤치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2000년대 초가 되자,인도네시아의 독립 역사가들이 추진한 내러티브는 논쟁거리가 되었습니다. 아스비(Asvi Warman Adam)씨는 "역사 수정"을 제안한 주요 인물 중의 한 분이었습니다(Adam, 2004). 그는 군사의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수십만 명의 공산당원과 공산당원으로 추정되어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살해된 수십만 명의 이야기를 1965년에 일어난 사건과 함께 서술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새로운 물결은 여전히 학술논문과 같이 제한된 범위에만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새로운 질서의 공식담론이 ​​주류 버전이 되어, 초중학교의 역사 교과서, 영화, 특히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는 신질서 박물관과 기념물에 의해 뒷받침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도전은 경제 및 정치 위기에 처했던 1998년에 일어난 일에 대한 대중의 기억을 상기시키려는 인권 운동가와 민주화 운동으로부터 나왔습니다. 2014년 12월 10일, 트리삭티대학교(Trisakti University)의 사회운동가와 학자들은 세계 인권기념일이었던 1998년 5월 12일 교내에서 학생 시위를 하던 중 보안군에 의해 사살된 4명의 학생을 추모하기 위한 높이 3미터의 검은색 세라믹 기념비를 건립하였습니다. 한편, 전국여성폭력위원회(Komnas Perempuan)에서는 폭력과 성폭행을 당한 중국계 여성을 추모하기 위해 1998년 5월의 참살사건에 대한 비문내용을 기록하였습니다. 자원 봉사자들은 중국계 여성이 당한 성폭행 사건을 언론에 호소하여, 개혁 초기에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관련 증거를 조사하기 위해 합동조사단(TPGF)을 구성했습니다. 그러나 대규모 성폭행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찾지 못했고, 정부는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부인했습니다. 정부의 대응에 맞서고자, 사건의 피해자이자 중국계 시민인  젊은 자원 봉사자인 이타( ita Martadinata)씨는 이를 미국 의회에서 증언하려고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으로 출발하기 전, 살해된 시신으로 발견되었으며, 중국계 여성이 대거 집단으로성폭행 당했던 사건은 사람들에게 잊히게 되었습니다. 1998년 5월의 참살사건의 내용을 그린 비문은 대중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인도네시아 최서단의 아체에서는 2011년 다수의 비정부 조직(NGO)들이 과감하게 아체 인권 박물관 건립에 나섰습니다. 박물관은 규모가 아담했습니다. 단체들은 티카르 판단지역(Tikar Pandan)의 사무실 안뜰에 ‘심팡 KKA(Simpang KKA)의 항쟁 주민들이 총격에 사살된 사건, 충돌 속에서 실종된 사람들과 군인들이 자유 아체 운동의 동조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고문한 루모그동 가옥(rumoh geudong)에 대해 설명하는 게시판을 세웠습니다. 단순한 박물관이지만 선언문에 명시된 것처럼 아주 큰 사명을 부여안고 있었습니다. 선언문: 어두움 속에서의 미약한 빛이 우리에게 잊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언제나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을 살리는 성소를 지었습니다. 살다 죽고 강간당하고 학살당하고 고문과 말살 속에서 죽임을 당한 우리 아체의 남녀들이 삶을 초월한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세요!  Aceh bek le lagee njan!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요컨대, 인도네시아의 정치개혁은 공식적 이야기와는 별도로 인도네시아의 인권 운동가와 민주화 운동이 새로운 역사의 서사를 창출하도록 대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들은 "망각에 대한 저항"을 외치며, 과거에 있었던 인권유린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는인도네시아의 만연한 불처벌 문화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박물관과 기념물을 통한 망각에 반대하는 운동은 결국 정부가 이러한범죄를 묵인하는 것에 맞서는 운동으로 성장하였습니다.    무니르의 집(Omah Munir) 박물관이 사회 운동의 본거지가 된 또 다른 증거는 동부 자바에 있는 말랑(Malang) 바투(Batu)시에 건설 중인 무니르 인권 박물관입니다. 뮤니르 하우스 재단의 일원으로서 제 생각을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저명한 인권 변호사 무니르 사이드 탈리브(Munir Said Talib, 1965-2004)가 2004년 9월 7일에 네덜란드로 가던 길에 살해된 것과 같은 인도네시아의 심각한 인권 침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연구와 개혁을 통해서 인도네시아에 민주화를 위한 정치적 수도꼭지를 열었다는 사실 외에 무니르 씨의 죽음은 많은 인도네시아인에게 경종을 울리며 구 정권의 유산이 현대 생활에 여전히 뿌리 깊게 박혀 있음을 말해줍니다.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은 현장에 있는 집행자들만 벌을 받게 하고, 핵심 인물인 고위급 군사 및 정보 장교들은 법적 형을 선고받지 않았습니다. 죄가 있는 데도 벌하지 않는 현상은 무니르의 살인사건에서 다시 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2013년 인도네시아에 경찰 박물관을 막 설립했을 때 무니르의 미망인 수시와티가 연락을 해왔다. 2013년, 인도네시아에 경찰박물관 건립을 완수하자마자 저에게 무니르의 미망인 수시와티(Suciwati)여사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인도네시아의 인권 투쟁을 위한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저는 무니르와 아주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그는 저의 오랜 동료이며 제가 인도네시아에서 법률 구조연구소에서 일할 때 저를 지도해 주신 분입니다. 저는 무니르의 미망인 수시와티 여사의 제안이 아주 훌륭한 생각이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치 1980년대 아메리칸 인디언 국립 박물관 (National Museum of the American Indian)과 미국의 민권 운동(Kyle 메시지, 2013)의 경우처럼 '투쟁에 참여하는' 본거지로서 박물관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문제는 이 프로젝트에 대한 자금을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박물관의 건설은 비용이 많이 들고 건축가, 토목 기사 및 사학가의 참여가 필요하므로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습니다. 수시와티 여사께서 첫 번째 문제를 해결해주었습니다. 그녀의 동부자바의 바투시에 있는 고 무니르선생님의 집을 박물관으로 기증한 것입니다. 마당과 건물을 포함해 400제곱미터도 안 되는 집이었습니다. 작기는 작지만, 이 건물은 중대한 역사적 가치를 지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 아주 좋은 디딤목이 되었습니다. 2013년 중반까지, 수시와티 여사께서는 더욱 많은 지원을 받고자 했습니다. 무니르의 삶과 인도네시아의 인권 투쟁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박물관을 짓는 다는 소식이 입소문을 타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Lukman Hakim Syaifuddin(후에 종교부 장관이 됨)과 국무장관이 된 미디어 네트워크 경영자 Dahlan Iskan과 같이, 무니르사건에 동조하는 정치인과 공무원과 더불어 젊은 사회운동가,예술가들이 합류했습니다. 박물관의 발전은 결국 인도네시아의 민주화 운동 네트워크를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박물관을 짓는 과정은 마침내 인도네시아에서 인권을 발전시키는 새로운 길을 열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인권과 민주화의 문제는 멀고 멀다고 느꼈던 사람들이 갑자기 공동으로 프로젝트에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돈을 바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사회학자 시드니(Sidney Tarrow)씨의 생각 (2011)을 반영하듯이, 시민사회의 연합적인 행동들을 통해서, 과거에 분리된 부분들이 한데 모여 조립되듯이 이루어졌습니다. 연말까지 박물관 건물이 완공되어 2013년 12월 8일 공식적으로 “무니르의 집”이란 이름으로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그저 꿈에 불과했지만, 이제 마침내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후 박물관의 운영과 관리를 위해 박물관의 발기인으로 구성된 ‘무니르 하우스 재단법인’이 설립되었습니다. 프로젝트 ‘무니르 하우스’는 정부측에서 수십 년 동안 감춰온 역사이야기를 향해 직접 도전하였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던 역사 이야기와 반대되는 경험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방문객들이 박물관에 도착하면 박물관 건설 중일 때 유명 조각가로부터 증정 받은 변호사 무니르의 흉상이 맞이해주고 있습니다. 방문객들은 새로운 질서가 수립된 지 얼마되지 않아 인도네시아의 인권 운동을 통해서 “인권옹호 재단(YPHAM-Human Rights Care Foundation-)”과 “인도네시아 법률구조재단(YLBHI-Indonesian Legal Aid Foundation)”이 설립 탄생되었다는 일련의 역사적 이야기를 접하게 됩니다. “인권옹호 재단(YPHAM)은 공산주의 정치범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정의로운 운동을 추진하는 조직이었다는 사실은 공산주의 운동을 성공적으로 진압하였다고 자랑하는 군사 정치에 대한 공식적인 도전이기도 하였습니다. 박물관에는 여성 근로자 마시나(Marsinah)의 사건,즉 파업 데모에 주도하였다고 연루되어 군사정치에서 심문을 받던 중 목숨 잃은 그녀의 이야기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마시나의 이야기를 다루게 된 것은 방문객들로 하여금 오늘날 인도네시아의 발전과 성취는 이 근로자들의 땀과 피로 얻어 낸 것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밖의 이야기에서는 파푸아와동티모르(현재는 독립국)에서 있었던 강제 실종 및 정치적 살인과 유사한 인도네시아의 심각한 인권침해 사건을 강조하였습니다. 물론 무니르씨의 개인 생활과 인권 옹호자로서의 삶의 여정, 그리고 그가 당한 살인사건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무니르 하우스”는 2013년 12월 8일 정식적으로 오픈하면서 모든 배경과 연령대의 방문객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생과 젊은 학생들이 역시 가장 많은 방문객 그룹입니다. 그들은 박물관 방문을 인권에 대한 배움과 대학 교육의 일환으로 보고 있습니다. 5년 후를 바라보며 우리 박물관이 인도네시아인의 삶에 중요한 보편적인 인권 규범을 주입하여 인권을 홍보하는 기관으로 효과적인 중개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에 매우 흥미롭습니다.   무니르 인권 박물관 2018년 ‘무니르 관리 위원회’는 건물, 기초 시설, 프로그램 및 지원 시스템 측면에서 무니르 박물관을 보다 더 큰 인권 박물관으로 향상되고 발전시키기 위해 정부와  협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단계는 매우 성공적이었고 정부는 박물관 건립 자금을 약속했으며 자금은 동부자바 지방정부에서 제공하고 토지는 바투시 정부에서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관리 위원회’는 이와 관련하여 세 가지 주요 활동으로 시민사회의 다른 구성원과의 광범위한 협력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첫째, 인도네시아 건축가 협회(AAI)와 협력하여 인권 박물관의 중요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박물관 디자인 공모를 개최하게 됩니다. 건축디자이너인 아이하마이드 (Achmad Deni Tardiyana-Apep이라고도 함-)씨는 환경 친화적이고 포괄적인 카리스마 넘치는 디자인으로 유명합니다. 둘째, ‘무니르하우스 재단법인’은 또한 자카르타 예술대학(Jakarta Arts Institute)과 제휴하여 박물관에 전시된 예술작품 창작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셋째, 무니르 하우스는 또한 친환경 운동가, 언론인, 원주민, 장애인, 여성 인권 운동가와 함께 박물관에 대한 이야기와 주제를 탐구하는 상담회의를 마련했습니다.회의상의 요점은 박물관전시 발전의 핵심 주제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1층은 어린이들을 위한 특별 디자인으로, 대중생활속에서의 중요한 가치관 즉 관용·자유·평등에 대하여 인식시켜 주고 있으며, 2층은 인도네시아 시민사회단체가 제기한 주요 인권침해 사건·환경·토착민·여성·언론자유 등에 대한 인도네시아 인권 역사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3층은 변호사 무니르선생의 생애와 그가 추진한 활동을 전시, 3층의 마지막 전시실에는 실종인구에 대한 것을 전시하여 방문객들이 인도네시아의 인권 문제에 대해 성찰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정부와 협력함에 있어, 특히 인권 문제와 관련하여 전시의 독립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앞으로도 인권박물관이 정의롭고 이타적인 태도로 인도네시아 역사의 주요 인권 폭력에 맞서 싸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점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실제로 약간의 조정과 변화를 주었습니다. 우선 박물관의 이름을 “무니르 인권박물관”으로 변경했습니다. 이것은 박물관이 과거에 전시했던 인권 운동가들의 삶의 특정 주제뿐 아니라 더 광범위한 인권문제를 다루기를 원하는 의미를 갖게 된것으로, 정부측의 공식 관점을 수용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전시상의 독립성에 있어도, 인도네시아의 정치적 분위기가 그러한 독립성을 위해 아직도 여전히 열려 있는 공간이 있다는 점을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겠지만, 우리가 걸어온 경험을 통해 한 가지 확실하게 된 것은 박물관과 역사적 기념물이 개혁시대의 인권운동가와 민주화운동을 위한 중요한 사회운동의 장소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인권 가치의 중요성에 대한 효과적인 접근으로, 젊은 세대에 주입되었는지에 대한 여부는 시간이 말해줄 것입니다.

2022-03-30

저자 소개: 유엔 쉬-원(Yuan Xuwen) 쉬-원(Emily)은 국립 대만박물관의 교육홍보 연구보조원으로 일하며  이주민에 대한 포용성과 박물관 접근성을 중심으로 연구하여 왔다. 2015년부터는 이주민들을 위한 안내원으로 동남아어·영어·중국어의 다국어 안내를 제공하였으며, 박물관과 이주민커뮤니티와의 연결을 구축하여 왔다. 2016년부터는 동남아시아 이주민 커뮤니티와 긴밀히 협력하였다. 박물관에서는 여러 차례 동남아 지역 문화 관련 예술제·전시·교육 활동 등을 실시해 오며, 동남아 국가들의 소장품에 대하여 해석하였다.   박물관 소개: 1908년에 설립된 국립대만 박물관은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으로, 1915년에 완공되어 현재 타이베이 기차역 앞에 약 백 년넘게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건물이다. 이곳은 풍부한 소장품들과 함께 독특한 위치에 있는 관계로 타이베이에서 없어서는 안 될 랜드마크로 자리 잡게 되었다. 박물관의 소장품은 언제나 인류학·지구 과학·동물학·식물학·문화적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최근 10년 동안 사회 경향에 부응하여 문화적 권리 평등과 다원적 참여를 이슈로, 초국가적 이주민에 대한 테마를 새롭게 추가하였다. 테마전시·교육 활동·출판물및 각종 초국가적 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문화 배경을 대중들에게 안내하는 교육적 목적을 두고 있다.  수동에서 능동으로의 내러티브: 2021년 10월 20~21일  국제 이민자 인권교육 온라인 워크숍 및 포럼을 통한 관찰 및 성찰 머리말 대만 국립 인권박물관(NHRM)은 대만에서 민주주의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백색 공포시기’를 민중들에게 상기시키주는중요한 기념 장소입니다. 박물관은 인권침해의 역사를 알려주는 교육센터이기도 하며, 인권 이슈를 지지하며 인권에 대한 이념을 홍보하여 인권의 가치를 옹호하고 대만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수호하고 있습니다.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산하의 주요 조직인 국제 인권박물관연맹 (FIHRM) 및 관련 부서, 비정부조직 그리고 전문가들의 승인과 지지하에 대만의 국립 인권 박물관은 국제 인권 박물관 연맹 아시아 태평양지부(FIHRM)-AP)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대만 국립 인권박물관(NHRM)과 국제 인권 박물관-아시아 태평양지부(FIHRM-AP) 의 새로운 임무는 국내의 인권문제에서 국제적인 맥락으로 초국가적인 이주와 인권문제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두 단체 모두 네트워크의 구축하에 국제적 인권문제를 대응해 오며, 대만정부를 비롯한 비영리조직, 박물관 및 초국적 이주자의 커뮤니티 간의 대화를 촉진하는 플랫폼/다리 역할을 하고있었습니다. 이번 포럼은 또한 최초로 박물관 종사자와 비영리단체의 직원이 직접 만나 토론하고 함께 문제를 검토하며, 대만의초국적 이주자 및 인권문제를 위해 같이 협력하는 장이기도 합니다. 포럼 및 워크숍의 목적과 시작 국제적 이민자의 물결이 목적지 도시를 향한 이동으로 야기된 여러 문제는 현대 박물관이 맞서야 하는 도전이 되었습니다. 본 포럼의 주요 초점은 박물관이 어떻게 문화 간의 대화를 통해 이민자들을 환영하고 고정 관념과 차별 그리고 배타적 심리를 대항하여 맞설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민자 인권 문제에 대한 박물관의 아카이브 구축, 역사 및 문화 유물의 보존, 개인 소장품, 이야기 및 집단기억에 대한 것을 간직해 주는 것을 논의합니다. 3일간의 포럼과 워크숍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위해 대만·호주·인도·미국·방글라데시·티베트· 남수단의 연사들이 모여, 이민자 및 관련 인권 문제, 박물관학을 기반으로 다양한 실무작업, 이론과 풍부한 경험을 이야기해 줍니다. 10월 20일 포럼의 주제: 이주민 박물관의 네트워크와 사회 정의 세션 1: 박물관과 이주민(근로자) 커뮤니티 및 대중간의 대화 및 소통 호주의 빅토리아 박물관에 부설된 이민박물관의 관장인 로히니(Rohini Kappadath)씨는 박물관으로서 인권을 실천할 수 있는기반으로,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박물관의 새로운 역할을 인식; 노후된 박물관 정책에 대한 점검; 앞으로 함께 일할 이주민 커뮤니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자문해야 할 것. 로히니씨는 호주의 이민박물관(Australian Immigration Museum)에서 다년간 근무한 경험에서 얻은 풍부한 작업 방식을 공유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두 명의 연사 유엔 쉬-원(Yuan Xuwen)과 리 잉-슈엔(Li Yingxuan)은 대만 출신으로, 각각 국립대만박물관과 카오슝근로자박물관의 최근 정책을 공유했습니다. 1990년대 이주 근로자의 첫 물결이 동남아시아에서 대만으로 들어왔습니다. 2021년까지 대만에 70만 명 이상의 동남아 이주 근로자들이 들어왔으며, 이주민은 30만 명을 넘었습니다. 이주 근로자들은 대만 국내의 인프라 시설·원양 어업·생산업 및 재택 간호에 필요한 인력을 충족해 주었습니다. 대만에 온 대부분의 동남아 신이주민은 결혼을 위한 이주민이며, 이들은 대만의 기본노동력과 가족 구성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만 사회에서는 뿌리 깊게 동남아 이주민을 차별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문화와 언어상의 장벽,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인해 대만에 거주한 이주 근로자와 신이주민(외국인 배우자)은 오랫동안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대만 최초로 세워진 박물관 즉 국립 대만박물관(대만엑스포)은  2015년 "다국어 가이드 서비스"를 시작으로, 동남아의 신 이주민들을 모집하여 박물관 가이드로서 같은 동포들에게 모국어 안내를 통한 박물관 체험 (그림 1)을 안내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대만 엑스포는 이주 근로자 커뮤니티와 적극 접촉, 다문화 축제를 공동 기획하여, 그들로 하여금 직접 프로그램 내용을 구성하도록하였습니다.(그림 2)  따라서 신이주민과 이주 근로자들은 대만 엑스포에서 그들 문화의 아름다움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전시할수 있었습니다.

2022-03-30

저자 소개: Tracy Puklowski 씨는 현재 호주 앨리스스프링스에 거주하고 있으며, 호주 최초로 세워진 국립원주민미술관의 발전을 책임지고 있다. 전 직책으로는 타즈매니아 론세스톤시의 크리에이티브 아트 및 문화 서비스의 소장직을 맡았으며, 호주 최대의 지역문화 기관인 퀸빅토리아박물관과 미술관 관장직을 맡았다.호주로 이주하기 전, Tracy는 뉴질랜드의 GLAM 산업(미술관·도서관·아카이브· 도서관)에서 고위 임원직으로 일함. 그녀는 게티 뮤지엄 리더십 대학원(Getty’s Museum Leadership Institute)을 졸업했다. 박물관 소개: 앨리스 스프링스(현지 원주민들은‘무반투야(Mparntwe)’라 부름)에 위치한 호주국립원주민박물관은 랜드마크적인 명소가 되고 있다. 호주의 심장부에 자리 잡고 있는 새로운 공간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을 보존하고 있는 문화를 보여 주며, 호주원주민 민족의 전시공간을 제공하며, 그들의 예술을 통해서 그들이 이룩해낸 것들을 홍보하고 있다. 박물관은 호주의 진실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거버넌스 혹은 관리 그리고 노동력에 있어 많은 원주민들이 확보되도록 하고 있다. 그러므로 박물관은 호주 원주민을 위한 도구로서, 그들이 세계를 향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도록 하고 있으며, 그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할 것인가를 위해, 능동적인 에너지를 불어주고 있다. 인권에 관하여, 세계적으로 박물관의 담론과 실무의 중요성을 알아가던 매우 중요한 시점인 2019년에 국제인권박물관연맹 아시아태평양지부(FIHRM-Asia Pacific)가 설립되었습니다. 지역에 초점을 두고 설립한 국제인권박물관연맹지부는 항상 소홀히 되는 지역의 소리를 확대해 주었으며, 특정 인권 이슈에 대한 분별과 처리에 있어서도 중요한 플랫폼으로서의 기능을 하였습니다. 저는 이글을 통해, 국제인권박물관연맹과의 인연을 돌아보면서, 모든 이들을 위한 인권 문제는 주변에서 핵심으로 가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2010년 국제인권박물관 연맹의 설립 당시, 영광스럽게도 제가 창립멤버로 요청받았습니다. 연맹의 설립은 흥미롭고도 시기적절하였으며, 박물관 각계에서도 사회적 정의에 대해 전면적으로 부각되던 시기이었지만, 최초로 국제적인 힘을 합하여 인권에 대응하는 것으로, 제 마음 한편으로는 조마조마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제가 일한 뉴질랜드 국립박물관 -Museum of New Zealand Te Papa Tongarewa.(약칭 Te Papa)- 을 일컬어, “인권박물관”이라고 선포할 수 있을까? 인권박물관이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 걸까? 저는 우리박물관이 자칫 잘못하여 모조품이 되어 버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우리 박물관의 역사와 가치를 돌아보면서 얻은 결론은 ‘인권박물관은 반드시 어떤 명확한 인권적 사명이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저희 Te Papa박물관은 언제나 다양성과 포용성을 추진하는 것에 힘을 다해 왔으며, 기꺼이 곤란한 이슈들을 다루는 것을 원했다는 점에서도, 인권의 행렬에 들어설 자격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015년 제가 국제인권박물관 연맹 회의에서 의장직을 맡았을 때, 이러한 기록을 했습니다: 「Te Papa박물관에 사회적 정의, 인권 및 가장 넓은 의미의 박물관 접근성은 부가적인 것이 아니며, 선택사항이나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박물관에서 전해 내려온 핵심사상으로, 마오리족의 말로 말하면 ‘화카파파(whakapapa)라고합니다.  1992년에 뉴질랜드의 국립 박물관법이 통과되면서, 언제나  갈 길을 잘 찾아내던 우리 박물관에 확고한 기반을 형성했습니다…우리 박물관 이사회에서 ‘ 2중 문화 정책’을 채택하고 나서부터... 어떤 분야이든 박물관에서는 ‘2중 문화’로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Te Papa박물관의 비전이「마음의 변화, 사고의 변화, 삶의 변화」이었고, 저희는 원래 곤란한 이슈들을 잘 다루던 박물관이었기 때문에,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들이나, 다양한 민족들을 위해, 심지어 박물관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도 창의적이고 새로운 체험을 안겨 주기 위하여, 우리만의 입장을 반드시 세워야만 했습니다.  국제인권박물관연맹의 웹사이트에도 명시된 바와 같이, 인권박물관은 전통적 박물관의 사고나 실무에 충분히 도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희Te Papa는 인권 박물관이며, 9월 대표님 방문의 영접을 기대하고 있습니다.」[1] 흥미롭게도, 제가 이 글을 쓰면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2010년에 그렇게 생각했듯이 일부 박물관들은 ‘인권’이란 것이 그렇게 꼭 필요한 분야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인권을 추진해야만 한다는 정당한 이유의 설득이 필요합니다. 또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현재 박물관이 운영되고 있는 맥락은 정말 '빠르고 극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당시의저는 뉴질랜드의 문화와 정치적 면모만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앞으로 수년 후 이렇게 극적으로 빠른 변화가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우리가 사는 세상을 휩쓸고 있으며, 삶의 패러다임이 변화되어, 이에 대한 책임을 우리 인류 모두가 함께해야 하므로, 아주 근본적인 대응이 필요합니다. 현재의 박물관이 "21세기의 복잡성과 당대 박물관의 책임과 약속 및 미래를 향한 도전과 비전”에 대하여 적절하게 정의를 내리지 못하자, 국제박물관협회(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s약칭 ICOM )는 박물관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위해, 2019년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2]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이 어리둥절한 상황에서 논쟁하였으며,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빚어진 마찰로 인해 분노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년간의 이슈가 다시 논의되는 2022년 프라하 대회에서 박물관 각계의 좋은연대가 이뤄졌으면 합니다. 하긴 그렇죠. 지금 세계 각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박물관을 찾는 관객과 이익관계에 있는 커뮤니티들이 그저 가만히 앉아서 ‘박물관이 자신을 올바르게 정의했는지’를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최근 수년 동안의 변화와 도전은 우리들 문 앞까지 와있을 뿐 아니라 전시공간을 오고 가면서, 서적 등을 검열하면서, 우리를 떨리게 하고 있습니다. 세계인권선언 제27조의1 모든 사람은 사회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향유하며 과학적 진보와 그것이 만들어낸 혜택을 누리는 권리를 갖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팬데믹에 깊이 빠져있으며, 모두가 익숙해 있던 생활패턴을 철저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단순한 "회전"뿐 아니라 더욱더 유연한 모습으로 대응하여 도시 봉쇄 등의 어려움을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에너지로서 온라인 학습이나 체험 그리고 참여 등을 통하여, 전시공간과 관람객들을 관리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이 중에 일부 박물관은 영구적으로 문을 닫아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팬데믹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는 공평하지만, 빈곤층과 취약계층에게 가져오는 불이익을 더욱 악화시키었습니다.  따라서 영구적으로 문을 닫아야 할 박물관은 항상 자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소규모 박물관이었습니다. 이 박물관들은 작고긴밀한 공동체들의 이야기를 기억해 주며 그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여 사람들에게 전달하였습니다. 이는 지역사회를 위해 힘을 다하여, 그들의 기억을 보존해 주고 이야기를 공유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박물관 접근성을 방해하는 장벽을 지속해서 제거해야 하며, 우리가 지배하기보다는 공동으로 창조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커뮤니티와 개인들이 협력하여 우리 후손들에게 과거에 이러한 비상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 그토록 심했던 인류 공동의 경험에서 재건과 치유를 위해 협력하는 것이, 우리 박물관이 맞서야 할 도전이며 영광스러움이기도 합니다.  예술이 지닌 치유력이란 새로운 개념이 아니며, 트라우마를 겪은 후, 박물관은 하나의 안전한 (또 필요한) 처소로, 사람들이 모일 수 있고, 질문할 수 있으며 상처받은 사건을 기념할 수 있다는 것도 새로운 개념이 아닙니다. 지금은 그것이 더욱더 깊어지고 있으며, 지역화된 것이 세계화되어 가고 있고, 세계화된 것이 지역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세계인권선언 제3조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이나 자유 및 신변의 안전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제25조의1 모든 사람은 의복, 음식, 주택, 의약품 및 필요한 사회 복지를 포함하여 자신과 가족의 평안한 생활에 필요한 것을 향유할 권리가 있으며;그리고 실업, 질병, 장애, 미망인, 고령 또는 불가항력의 사고로 인해 생활할 수 없는 경우,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세계적인 기후 위기는 우리의 생활양식에 또 하나의 위협으로, 중대한 인권 위기가 되었습니다. 기후변동은 양식의 안전보장, 주거생활 또한 생명 자체에까지 위협을 주고 있습니다. 비록 작은 섬나라들은 다른 나라들보다 기후 변화가 미친 영향이 훨씬 적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기후 변화의 영향에 있어, 물리적으로는 가장 취약한 것으로, 이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매우 구체적인 위협이 되었습니다.  모든 박물관은 기후 변화에 대한 인식을 높여, 행동 조치를 해야만 하는 책임을 갖고 있으며, 특히 과학자들은 '탈진실' 의 세계에서 과학적 사실을 지켜야 하며, 박물관들이  그 증거의 수호신으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제가 호주의 태즈매니아에 있는퀸빅토리아박물관 및 갤러리((Queen Victoria Museum and Gallery,약칭QVMAG))에서 관장으로 일할 때, 우리 과학자들이 동물(곤충)들이 지구 온난화 환경으로 인해 점차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증거와 동시에 현지의 주관기관이 ‘기후 위기가 임박’했다고 선포하면서, 우리 박물관은 기후변화를 핵심적인 초점으로 결정하였습니다.[3] 그러나 이것은 아카이브에만 의존한 지식과 증거로는 불충분함으로, 직접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였습니다. 2020년 초 런던의 호니먼박물관(Horniman Museum and Gardens)에서는 기후변동 선언을 통과하여, 사람들의 인식을 높이고행위를 변화시키기 위한 관람객과의 협력에 초점을 두었으며, 박물관 자체의 관습이나 활동 등도 점검하도록 했습니다. 기후 변화에 대하여 박물관은 어떻게 기여할까에 대하여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합니다. 박물관이 지니고 있는 자원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지금부터라도 지속할 수 있는 건물을 계획하고 있습니까? 박물관의 후원자들은 박물관의 가치관을 인정하였는지? 최근 한 석유 회사가 박물관에 자금을 지원하는 논의를 함에 있어, 이사회에서 하지 않고, 공공장소에서 진행하였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난민들의 수요는 또 어떻습니까? 이것은 앞으로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지금 이미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2020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3,070만 명이 실향민이 되었고, 그중 98%가 이상 기후로 인한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4] 수천 명의 마샬제도 주민들이 미국의 일부 지역에 안치되었으며, 그곳에서 그들의 문화와 전통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하는 새로운 도전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세계인권선언 제7조 법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법의 보호를 평등하게 받을 권리를 가지며 차별시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이 선언에 대한 차별 또는 선동적 행위로 인한 피해로부터 평등하게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유색인종에 대한 경찰의 무력 사용은 세계적인 항의를 불러일으켰고 “Black Lives Matter” 운동을 부활시키기도 했습니다. 잔혹한 경찰 폭력에 주목하여 시작된 이 운동은 그 후 전 세계적인 반응과 함께 제도적 인종주의와 식민주의의 여파 등의 이슈로확대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박물관의 과거와 행동에 대하여 더욱 명확한 조명을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박물관의 관행적 측면을 문제시하는 것도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198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면, 대영 박물관을 향해,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을 그리스로 반환하라는 공식 요청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예술 역사학자인 모리스버거는 1990년대에 “미술관이 인종 차별주의자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진 적도 있었으나 지금처럼 이러한 이슈들이 시대적 정신을 타고 불어 들어온 적은 없었습니다. 마치 반식민 운동으로 유명한 “Decolonize This Place” 또는 영국 석유회사 BP브리티시를 채택할 것이냐 아니냐 하는 ”BP or not BP” 의 운동 단체는 연출식의 개입 방식을 통해서 박물관의 공간을 인수하여, 박물관의 자금조달·물품반환·컬렉숀의 취득방법·원주민족의 능동성 및 작업상황에 대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주목하게 하였습니다. Vice미디어사로 부터 제작된《필터링되지 않은 역사투어(The Unfiltered History Tour) 》프로그램에서는 대영 박물관의 “분쟁의 여지가 있는 유물”에 대한 이야기를탐구하였습니다.[5] 근래에 와서는 캐나다 인권 박물관을 포함하여 여러 문화 기관의 전직 직원들이 직장 불평등과 구조적 인종 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낸 것도 정말 끔찍한 아이러니입니다. 문물의 출처를 찾는 공동체 “소스 커뮤니티(source communities)”로 부터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스터섬의 라파누이(Rapa Nui)후손들은 자신들의 조상(투푸나)을 뜻하는 호아 하카나나이아(Hoa Hakananai'a)의 모아이 석상의 반환을 요청하기 위해, 2018년 대영 박물관을 방문했습니다. 이스터 섬의 후손이자 주지사인 Talita Rapu씨는 호아 하카나나이아의 식민 약탈에 대하여 이처럼 신랄히 말하였습니다.  “라파누이족에게는 몸뚱이만 있을 뿐, 영혼은 당신들 손에 있습니다. 우리는 영혼이 없이 텅 빈 몸으로 세상 속에서 걷고 있습니다.”[6]  토착민 소장품을 연구해 본 많은 연구자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문물들이 지닌 정신은 그들의 종족이나 그들의 가족 그리고 그 후손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 무슨 이유로 이것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있습니까? 전통적 소유권자가 “육체와 영혼”의 재회가 최선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박물관이 무슨 입장에서 그들과 언쟁을 하겠습니까? 우리에게식민주의의 관행을 떼어내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없다면, 우리에게도 그 결과를 악화시킨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유엔의 원주민 권리선언 제3조 우리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으며, 우리의 경제와 사회 그리고 문화발전을 추구할 수 있다.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글을 쓰면서, 제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에는 연방 국가 수준의 ‘권리장전 (Bill of Rights)’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호주에서는 주별로 시민의 인권 보장을 위해, 인권 옹호에 대한 책임을 개인과 조직에 부여하고는 있습니다. 생각보다는 만족스럽지 않습니다만. 한편 저는 나름대로 새로운 문화적 실체를 다지고 있었는데, 그것이 호주의 국립원주민미술관으로, 노던 테리토리의 앨리스 스프링스에 건설될 예정이었습니다. 이곳은 아름다운 곳이었으나, 충돌이 공존하여 독특한 문화와 예술과 함께 세대 간의 불이익과 트라우마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호주의 원주민족[7]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존속되어 지금까지 내려온 문화로, 특히 그들의 비주얼 문화는 시들지 않고 계속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원주민의 예술이 모래알이나 암석에서 화판이나 캔버스로 이전되었을 때, 호주 예술의 역사적 궤적은돌이킬 수 없이 바뀌었고, 전 세계 관객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예술가들과 그들의 공동체 모두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정신적으로 이로 인한 혜택을 받게 되었고, 원주민들의 이야기와 역사를 새로운 청중에게 소개하는 문화적 연결을 강화해 주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지금 제집과 같은 존재가 된 노던 테리토리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생명력이 넘치는 미술관이며, 무시할 수 없는 예술적 창작력을 가진 곳입니다. 노던 테리토리는 호주에서 원주민과 토레스해협 섬주민들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여 전체 원주민 가구의 약 45%가빈곤선 이하에서 살고 있습니다.[8] 젊은이들의 자살률은 전국의 평균 3배로,[9]  노던 테리토리의 교도소에 갇힌 사람들의 85%가 원주민들입니다.[10] 그래서 항상 우리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국립 원주민 미술관(National Aboriginal Gallery)과 같은 박물관(이 문제에 있어, 다른 박물관도 마찬가지로)이 인권을 위해 싸워야 할 것인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만 인권을 위해 싸울 수 있는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미를 찾아내고 의미를 창조하려면, 다시 한번 새롭게 우리의 생태계를 상상하고 재설계해야 할 것입니다. 국립원주민박물관으로서 이것은 원주민들의 원칙을 굳건하게 지켜며, 그들의  거버넌스, 관리 및 인력에 있어도, 원주민들이 대거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으로, 그들이 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고 주동적이며 권리와 책임을 공유하여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호주가 과거로부터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전 국민적인 화해로 향해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일반적인 갤러리/박물관의 패러다임으로 하는 식은 이것을 달성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글에 서술된 글로벌 이벤트나 인권문제에 있어, 박물관의 규모나 위치 또는 목적과 관계없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 피할 길이 없습니다. 대다수의 문화기관은 항상 관중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왔으며 관중들을 중심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또 그러한 사고가 아주 큰 유익을 가져와 더 소통할 수 있었고, 더욱더 중점에 적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 단계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을 우선시해서, 모든 사람의 인권과 존엄성을 지켜주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는 관점으로 시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