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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행동을 통해 아시아 인권에 관한 이해와 존중을 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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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HRM-ASIA PACIFIC 이벤트

뉴스
2022-09-23

저자 소개 마이켈‧벨트랜 (Michael Beltran)씨는 올해로 6년차 기자생활을 해오면서 평생을 정치 운동에 바치셨습니다. 기자직을 통해서 자국의 다양한 소외 집단에 관한 이슈의 기사를 다루어, 인권에 대한 이슈, 민주적 공간의 박탈, 중국 및 기타 세계 강대국의 개입주의, 강제 이동, 강제 이주와 실향민 등의 이야기를 보도한 바 있습니다. 필리핀도 서서히 봉쇄 해제를 하고 있지만, 아직도 코로나가 가져온 집단적 트라우마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필리핀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바이러스도 아니고, 백신도 아니며, 알 수 없는 미래도 아닙니다. 필리핀에는 다양한 시민 사회단체가 있는데, 서로 다른 경로를 통해 그들의 이념들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또한, 비정부조직, 대중단체, 다양한 산업체와 문화단체들도 국가에 기여하고 있어 취약계층 시민들이 그나마 배를 채우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도시 봉쇄를 한 기간, 시민사회 단체들이 일어나서, 부족한 것들을 일부 채워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동안 식량과 식량안보는 항상 시급한 문제로, 저소득층이 지속해서 식량을 확보하고 비축하는 것이 많은 공공복지기관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었습니다. 시민단체와 여러 재단들은 전국적으로 식량 자원과 식량 안보가 가장 결핍된 특히 가난한 빈곤 지역에 채소밭과 주방을 설립하였습니다. 지붕에는 재활용 플라스틱병으로 만든 화분에 채소나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심었으며, 지역단체들이 공동으로 수확하여, 힘을 합해 음식을 만들어 가며 굶주리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제공하였습니다. 사회를 감동시키게 한 또 하나의 행동은 서로 나누어 주는 “커뮤니티 주방”입니다. 지역 사회 운동가이자 예술가인 패트리샤 논(Patricia Non)씨는 맨처음 아주 단순한 마음으로 공공 장소에 테이블이나 선반에 음식을 가득채워 "원하고 싶은 것은 가져 가시고, 주고 싶은 것은 가져 오세요."라고 써붙혔습니다. 그렇게 시작한것이 전국으로 퍼져, 서로 협력하는 캠페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진정 필요로 하는 수요를 해결하였을 뿐아니라, 정부의 코로나 대응에 대한 비효율성과 부적절한 조치를 들어나게 한것이기도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정부는 이러한 행동을 "테러리스트"로 간주하며 압박하여, 팬데믹 정치속에서 되풀이하며 나타나는 주제가 되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사람들은 정부의 위기 처리에 깊은 회의를 갖게 되었고, 일반적으로 시민들은 이 종말론적 상황에서 두테르테 정부가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정부는 의료 비상사태에 대처하기는커녕, 도시 봉쇄를 이용하여 강력한 국가폭력과 테러행동으로 피해자들을 박해하였습니다. 2018년 말부터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행정부는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해 맞서 싸우겠다고 선포했습니다. 정부는 공산주의자나 테러리스트(이 두용어를 같은 의미로 사용)만이 자신들의 체제를 의심한다고 하였습니다. 더욱 무서운 것은 비판자들로 낙인이 찍힌 후 일어나는 일들이 었습니다. 이는, 사회운동가나 반체제 인사들이 공산주의 테러리스트로 낙인이 찍히게 되면 언젠가는 그 사람이 소멸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구체적인 “지역 공산주의 무장분쟁 종식을 위한 국가임무팀(National Task Force to End the Local Communist Armed Conflict.) 약칭 NTF-ELCAC을 설립하였습니다. 그 배경을 설명하면, 필리핀 내전이 지속된 지 50여 년. 필리핀 공산당(the Communist Party of the Philippines. 약칭CPP)과 신인민군(the New People’s Army. 약칭 NPA)들의 무장 게릴라를 형성한 것입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필리핀 정부의 가장 완고한 반대자였는데, 정권을 비판하는 민간인들도 반군으로 취급되어 동일한 조사를 받게 된 것입니다. 정부는 극단적인 수단으로 정부에 대한 반대 언론을 하면 일제히 젊은이들을 빨아들이는 무장혁명 공산주의의 선전으로 간주하곤 했습니다. 무장 충돌은 그동안 정부가 답변하지 못한 수많은 질문이 드러나게 했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필리핀 사람들이 무력으로 일어나려고 하는지? 왜 그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싸워야만 하는지? 평화 협정을 위한 로드맵은 오랫동안 존재해 왔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이 선택한 대응방식은 모든 적을 몰아붙여 그들을 악마화하여 고조되는 폭력 행동을 정당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산당으로 몰아붙인 마녀사냥은 냉전시대의 매카시즘이 행한 일들을 떠올리게 하는데, 두테르테의 악명 높은 유혈 마약전쟁이 이와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두테르테는 취임시부터 사법부가 주도하는 마약 제거 작전 “ 오플란 토캉(Oplan Tokhang)”을 제정. 마약소탕이라는 이름으로, 마약 중독자 또는 마약판매자로 낙인찍힌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잡아들였으며, 정권에 반대하는 자들도 이런 운명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가장 긴장할 무렵 2020년은 사회운동가들에게도 가장 위험한 시기이었습니다. 집에서 머물고 있다는 것은 총알을 맞을 수 있는 사격 대상이 된다는 것과 같았습니다. 유명하고 이름난 지도자들이 자택에서 소리 없이 잔인하게 암살되고, 공산당으로 몰린 사회운동가들도 눈에 띄게 살해되는 소식이 늘어났습니다. Jory Porquia 씨, Randall Echanis 씨, Zara Alvarez 씨 및 Carlito Badion 씨는 국가 폭력 속에서 희생당한 유명 인사들입니다. 그들은 살해당하기 전에 모두 "공산주의 테러리스트"로 지명 당한 사람들입니다. 군부 측의 홍보 아래 이는 사회 속에서 아주 보편화된 단어로 변신하여, 어느 누구도 일단 공산당이 되면 필연적으로 테러리스트라는 개념을 확고히 해주었습니다. 필리핀에서는 어떠한 이데올리기도 불법으로 보지 않지만, 무장 군부대에게 있어 ‘좌파’란 의심할 여지 없는 공산당이고 테러리스트이기 때문에, 반드시 근절시키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산당이란 이름으로 살해하는 소름 끼치는 행동은 심지어 유엔 인권 위원회까지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 뿐만아니라, 사회운동가들이 아니고 각양각색의 시민사회 구성원들이 테러리스트로 취급받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국회의원, 교인, 언론인, 유엔 특별보고관 그리고 단순히 자선활동을 한 유명 인사까지 이르렀습니다. 정부를 비판만 했다면 반드시 공산당 테러리스트 명단에 들어갑니다! 필리핀에서는 코로나 대응을 위한 거금의 기부금과 대출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민중들에게 쓰인 구제금은 적고도 적었습니다. 대부분의 자금이 군과 경찰에 유입되어 전국적인 군경배치에 쓰였으며  시민들은 사소한 위반이라도 범하면, 예를 들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거나 통행금지를 위반하거나, 심지어 자기 집에서 문밖에 나온 것만으로도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빈민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건 코로나가 아니라 먹고 살것없고 일자리가 없어 편히 못 지내고 굶주려야 한다는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2020년 4월 이런 문제가 심해지자, 마닐라 대도시에 있던 수백 명 빈민가 시민들이 구호품 부족과 식량난으로 일어나 항의를 시작했으나,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였으며, 양식의 결핍은 여전하였으나, 두테르테 정권의 옹호자들은 그들의 부와 특권을 과시하고 자랑하였고, 곤봉과 수갑으로 항의자들을 대응했습니다. 전국에서 오랫동안 굶주린 사람들 중 21명이 항의 끝에 감옥에 갇혔고, 사회여론이 들썩이자, 겨우 풀려나오게 되었습니다. 2020년 7월 필리핀 정부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실시한 독재정권의 전면 계엄시기 후, 가장 혹독하고 민중을 박해했던 국가정책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반테러리즘 법안'을 통과시켜 대상 소멸 과정을 간소화 하였습니다. ’반테러리즘 법안'은 두테르테와 그 부하들이 가장 들먹이기를 좋아하는 주제의 결과물로, 이 법을 통해서 시민의 자유를 무한제로 통제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단순히 "테러리스트"라는 혐의를 부여해 영장도 없이 사람들을 체포할 수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테러리스트”를 적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대부분이 2020년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불행히도 코로나와 함께 지금까지 필리핀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습니다. 필리핀의 근대 역사상 가장 심각한 인권 재앙이 상연되는 중이며, 취약계층 사람들의 경제적 권력도 계속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필리핀 정권의 추악함은 그 비참한 인권 침해뿐 아니라, 도시 봉쇄를 동안 적나라하게 드러난 엄청난 사회적 불평등입니다. 과거에 겪었던 위기의 여파가 더 이상 괴롭히지 않는다 해도 별 차이가 없습니다. 막 끝난 2022년 5월 총선을 보면 그런 느낌이 더욱더 강하게 듭니다. 인권에 대한 전적인 침해는 과거에 없었던 저항을 불러왔으며, 사람들은 항의와 집회 그리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대항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지역사회의 주도적인 노력과 시민사회의 반항에 힘입어, 그나마 작은 공간이라도 민주주의 인권을 위해 확보할 수 있던 것이 크나큰 역활을 하여, 과거의 엄중한 처벌과 가혹한 법으로 괴롭혔던 계엄령 시대로 되돌아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사뭇 다행입니다. 우리는 희망을 품을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지역사회의 채소밭과 주방 그리고 음식저장소는 소리 없는 저항의 일부일 뿐입니다. 저항이란 다양한 형태로 보여질수 있으며, 점점 더 많은 사람을 통해서 반기를 든 거센 움직임이 더 높은 빈도로 거리를 향해 나오고 있습니다. 모든 상황이 더 좋아지기에 앞서 더 나쁜 상황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필리핀의 많은 시민, 조직 기관이 이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2022-09-23

주 강용 소개: ‘빈곤문제’의 작업자.  “인생백미(doyouaflavor.tw)” , 가난한 사람으로부터 배운다는 뜻의 “궁학맹(wotp.life )”의 공동 설립자.  "Taipei for the Poor"를 기획 전시. "거리에서의 생존 가이드" 그리고 "도시 공생 ING"를 공동 집필하여 출판. “인생백미”소개: 인생 백미는 노숙자와 도시 속 빈곤자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비영리단체입니다. 2014년부터 대중들을 환기시키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직접적인 봉사에 뛰어들면서, 인근 주민들 그리고 정신질환자 단체, 이주자·근로자·젠더 단체 등과 더불어 시민들에게 의식화할 수 있도록, 많은 문제들 속에서 “인도자”가 되는 길을 걸어왔습니다. 번화도시에서 행해지는 빈곤자의 전시 과거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오늘날 타이베이시의 눈부신 번영은 실로 꿈을 찾으러 고향을 떠난 사람들, 아무것도 없던 빈털터리들, 최하층의 노동자들, 이민자, 원주민 그리고 한푼없는 빈곤자들. 이들이 흘렸던 피와 땀과 심혈이 오늘을 이룩했음을 알 수 있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남에서 북으로 이런 사람들의 노력과 헌신. 어쩌면 어느 높은 산에서 왔고, 혹은 어느 섬의 한 모퉁이에서, 또는 동남아시아의 어느 국가에서 이렇게 찾아와 오늘날의 타이베이시를 이룩했고, 위대한 도시의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 냈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번영한 타이베이는 성공한 부자들의 타이베이일 뿐 아니라 좌절했던 가난한 자들의 타이베이이기도 하다. "-가난한 사람들의 타이베이에서(손대천)-“ 금세기에 들어, 세계는 비로소 빈곤을 중요시하고 시급한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지만, 이 문제를 논의할 때 가난한 사람들의 소리는 항상 전달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이 속에서 직접 느끼고 빈곤에 반응하는 주체로서 깊은 체험과 경험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빈곤자들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고정관념은 이들이 자신을 숨길 수밖에 없게 하였으며, 낙오자로서 침묵하는 사람들로 만들고 있습니다. 2017년부터, 타이베이에서 노숙자, 도시 원주민, 취약가정, 거리 청소년, 정신질환자등의 사회 소외계층을 지켜온 다양한 단체들이 힘을 합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타이베이'(이하약칭  '빈북')을 만들어, 대중들로 하여금 가난한 사람들의 삶속에 들어가 보고, 도시속의 빈곤 문제를 이해하도록 초대하는 연례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2022-07-20

오늘날 많은 국가의 박물관에서 시급하게 다루는 이슈로서, 인권 박물관과 관련조직의 상대적 자율성과 액션 공간에 대하여, 본대회의 주제를 통해서 비판적으로 토론하고저 합니다. 박물관과 정부 그리고 권력자들 사이에 어떤 형태의 관계가 존재할까요? 이러한 의존관계는 또 어떤식으로 박물관의 역할을 만들어 내었으며, 대중들이 민감해 하거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제를 대할 때, 박물관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 전세계로 하여금 인권문제를 스스로의 책임으로 생각하고,다양한 각도에서 사회, 문화, 정치적인 면에서 용합과 배제의 이슈를다루는 박물관으로서, 더욱더 초점을 맞춘 시선으로 현재의 정세를 파악하고저 합니다. 대회는 금년의 투고에 있어, 특히 실무적인 사례를 환영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으로서 이를 어떻게 다루고, 협상하며, 전체사회의 융합적인 이슈에 대하여 공유하였으면 합니다.  인권박물관으로서,실질적으로 확증된 경험으로, 중요한 요점을 파악할 수 있고, 융합을 촉진할 수 있는 방법이나 대책들이 있다면, 어떤것일 까요? FIRHM 대회의 취지는 항상 박물관들간의 실무경험을 위주로 이야기 하고, 박물관의 진정한 역량강화와 발전방법 그리고 지역사회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형성을 위해 이야기 나누었으면 합니다. 주최측 금번 2022년 국제 인권박물관 연맹대회는 노르웨이 민주주의 및 인권 박물관 네트워크(Demokrati nettverket)에서 주최를 합니다. 호스트 박물관으로는 노벨평화센터, 홀로코스트 및 소수 종교 노르웨이 연구센터 및 1814 에이츠볼 헌법박물관입니다.

인권논문
2022-09-23

저자 소개:에르판・파리야디(Erpan Faryadi) ‘에르판・파리야디(Erpan Faryadi)’씨는 “보르네오 연선”의 프로젝트 매니저입니다. 정식명칭“보르네오의 연구 및 홍보 연선(Advocacy and Research Circle of Borneo)” 인『보르네오 연선(Link-AR Borneo)』은 인도네시아 지역사회의 단체로, 서부 칼리만탄지역의 민주와 인권, 자연자원과 기후변천 및 시민주권을 옹호하며, 이에 대한 활동, 교육과 연구를 실시하는 보르네오의 한 연구 모임입니다. 부서 소개: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연선” 정식명칭 “보르네오의 연구 및 홍보 연선(Advocacy and Research Circle of Borneo)” 인 『보르네오 연선(Link-AR Borneo)』은2009년  4월 2일 설립된 비정부조직으로, 토지와 산림의 천연자원의 광산업 통제라는 심각한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경제적이익으로 이용된 광업은 천연자원을 장악하여, 원자재를 개척하는 것이 우선 과제로, 세계 각처에 있는 대기업에 제공되고 있습니다.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한 보르네오는 이러한 상황과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보르네오 연선』은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지역사회의 이익 그리고 지속 가능한 환경 정의에 대한 캠페인을 펼치어 왔습니다. 설립 이후 인권의 옹호, 사법 정의, 지속 가능한 산림 및 토지관리에 대한 개혁, 그리고 산림 및 토지 관리 문제에 있어, 지역사회의 독립성을 추진해 왔습니다. 코로나에 대한 인도네시아 정부의 대응 정책과 조치, 그리고 이러한 정책과 대응들이 인권의 이행과 존중에 있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초래했는지 검토할 때가 지금 다가왔습니다. 2020년 초(1월~3월) 코로나의 시작부터 인도네시아 정부와 관리들은 방역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과소평가했습니다. 2020년 초. 인도네시아 부통령은 종교 지도자들의 기도가 있는 한 인도네시아에는 바이러스가 침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조코 위”대통령도 2020년 3월 "일종의 한약을 먹으면 바이러스 감염증을 통제할 수 있다"고 국민들에게 말했습니다. (CNN 인도네시아. 2020년 3월 16일 자 참조. "Media Asing Soroti Jokowi Minum Jamu Untuk Tangkal Corona" )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렇게 비과학적 언론으로 코로나 19에 대한 대응을 시작하였습니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코로나 19 방역조치 2020년 3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세계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로 선포했습니다. 사실, 이 시점부터 인도네시아 정부는 체계적인 방역 조치와 함께 의료 전문가, 특히 전염병학자 또는 전염병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바이러스 확산을 억제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의학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의료 전문가들의 의견을 귀담아듣지 않고 때로는 거부하며, 오히려 그들의 의견과 위배되는 일을 종종 했습니다. 2020년 4월부터 정부는 인도네시아 군부대(TNI)와 경찰들의 힘을 빌려 시민들이 집 밖을 나오지 못하도록[1] 봉쇄하고, 종교 활동과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며, 모임이나 집단적으로 거리에 나오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이는 모두 인권, 특히 시민권 및 정치적 권리를 침해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바이러스를 세계적 팬데믹이라고 발표 이후, 인도네시아 정부도 통제 조치를 취한 것은 확실하지만 전국적으로 확대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조코위’의 방역 조치가 너무 느려, 국민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2020.3.16일자 인도네시아BBC News지 참조.“Virus corona: Jokowi umumkan langkah pengendalian Covid-19, tapi tanpa komando nasional.”) 인도네시아 정부는 매달 새로운 방역 용어와 정책을 발표했지만, 바이러스의 확산에는 큰도움이 되지 않았고, 치명적인 질병에 직면한 인도네시아 정부도 혼란한 상태에 빠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체계적인 지침이 결핍되었습니다. 2020년12월. 인도네시아의 사회부 장관 율리아리(Juliari Batubara)씨는 빈곤층에게 지원하는 필수물품의 방역프로젝트를 이용한 뇌물을 받았습니다. [1] (주2)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바이러스 감염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인도네시아 정부관리는 이런 민망스러운 스캔들에 휘말려 있었습니다. 코로나의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계속 늘면서 인도네시아 정부의 방역활동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정부는 국민 건강을 지켜주는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이것 또한 인권의 하나이고, 방역 전선에서 일하는 의료진을 위한 적절한 보호 장비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의 맹렬한 확산에 직면한 인도네시아 정부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아, 2021년 6월 중순부터 확진자와 사망자 수는 계속 증가하였습니다. 코로나가 인도네시아 국민들에게 미친 영항 인도네시아 정부는 2020년 4월부터 “PSBB라는 대규모 사회적 제약”의 조치를[1] [M帳2]  발표하여, 코로나 19의 전염 사슬의 방역을 시도했지만, 완전한 실패로, 세계 보건기구의 방역 목표인 전염병 확산의 억제와 사망자수 감소를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정부는 국민의 건강과 경제발전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2021년 7월 인도네시아의 코로나19의 확산은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2021년 7월 3일에서 20일. 인도네시아 정부는 자바섬과 발리섬에 대한 코로나 방역 비상조치 “긴급 사회활동 제한(PPKM)”을 시행하여 감염자 및 사망자수의 감소를 시도했습니다. 자바섬과 발리섬을 제외한 행정수준이 비교적 낮은 카운티와 도시에는“소규모 지역사회 활동제한 비상조치 (PPKM Mikro Darurat”를 실시하였으나,이러한 조치들은 코로나 방역에 도움이 되지 못했으며 코로나 확산 사례 및 사망자수는 계속 증가하였습니다. 코로나 방역에 대한 인도네시아 시민사회 단체의 역할 인도네시아의 시민사회단체는 개혁개방(탈권위주의 시대)이후 활발한 발전을 보였으며, 상당수가 인권이나 기후변화, 의료, 사법개혁, 식량주권, 토지권과 토지개혁, 농민과 노동같은 문제점에 적극적인 초점을 두어 왔습니다. 시민단체는 의사, 변호사, 농업 전문가와 같은 그룹과 개인들을 캠페인 활동에 참여 하게 하여 시민단체의 지속적인 성장을 가져오는 한편 해당 분야에서 많은 신뢰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에 힘입어, 인도네시아는 탈권위주의 시대 (1998년 이후)에서 민주적 개방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라뽀르 코비드19(LaporCovid-19)”시민연맹과 같은 인도네시아의 시민사회 단체는 정부의 방역활동에도 많은 힘을 주었습니다. 코로나가 확산하기 시작한 2020년 3월 초. 정부 측도 코로나를 의식하기 시작했을 무렵. 코로나 19의 확산 우려와 공중 보건을 문제시한 사람들로부터 “라뽀르 코비드19” 시민연맹이 설립되었습니다. “라뽀르 코비드19”시민연맹은 시민에게 발병 통보를 전하는 플랫폼을 만들어, 그들이 발견하였으나, 정부가 손닿지 못하는 방역 정보를 대중들에게 공유하였습니다. 대중들의 힘을 모아, 코로나 감염 확진자 수 및 인근지역의 방역에 관한 일들을 기록하여, 다리와 같은역활을 하면서, 방역에 대한 데이터를 기록해 갔습니다. “라뽀르 코비드19”를 통해 정부와 시민들은 국내의 감염 분포 및 심각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정부는 “라뽀르 코비드19”가 수집한 데이터를 이용하여 코로나에 대한 방역 정책 및 대응 계획을 검토할 수 있었습니다. “라뽀르 코비드19”는 아래와 같은 시민단체들로 구성됨.: 인도네시아 법률지원재단(YLBHI). 인도네시아 타임 매거진. 음악밴드그룹(에페크 루마카카-영어로 온실효과의 뜻-). 국가 투명성 조직. 로카타루 재단. Hakasasi.id. 인도네시아U-Inspire연맹. STH 젠테라 로스쿨. 나라시 테레비 방송사. 루작 도시연구센터. 부패감시단체 인도네시아 코럽션 워치(ICW) 등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인도네시아의 법률 지원재단 YLBHI은 인권단체로,1970년대에 설립되어 인도네시아 정부의 인권준수를 지속해서 감독해 왔습니다. 인도네시아Tempo 그룹에 속한 타임스 잡지는 인권, 환경, 부패등과 같은 문제를 항상 주시해왔습니다. 라뽀르 코비드19 부패감시단체. 법률지원재단. 경제사회 교육홍보 연구원 (LP3ES). 법률 및 인권재단등으로 이루어진 “시민사회연맹”의 활약을 통해서 인도네시아 정부의 방역정책이 얼마나 혼란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연맹은 2020년 3월 코로나 발생 이후 인도네시아 정부가 제대로 구실을 못 하고 방역에 실패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라뽀르 코비드19는 정부가 방역 조치에서 너무 많은 실수를 하여, 사망자 증가를 효과적으로 억제하지 못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라뽀르 코비드19의 기록 데이터를 보면 알 수 있듯, 당초 정부가 대처를 매몰차게 했다면 확산 초기부터 강력한 예방 및 통제정책을 발표했고 사망률도 낮추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Tirto.id. 2021년7월6일.특별기사Kasus Meninggal Melonjak & RS Kolaps, Negara Gagal Tangani COVID?"참조. https://tirto.id/ght5) 인도네시아 정부는 2020년에 코로나 방역을 위해 695조 2,000억 루피아 (약 1조 4000억 대만달러)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2020년12월20일. 일간지 콤파스의 보도“Kebijakan Pemerintah Menangani Covid-19 Sepanjang Semester II 2020.”참조)

2022-09-23

저자 : Hua-Tzu Chan LOH Li Chen Hua-Tzu Chan:타이베이 당대 예술관 연구팀 부팀장을 역임하고 있음. 국립대만예술대학 예술경영 및 문화정책대학원 박사. (사단법인) 대만시각예술협회사무장 및 타이베이 디지털 예술센터 상무이사 역임. LOH Li Chen:타이베이 당대 예술관 관장. 현대예술 및 뉴미디예술의 연구 및 창작. 아트창작 및 평론, 예술교육, 디지털 마케팅 및 트렌드 연구. 대만 세신 대학 대외홍보 및 광고학과 지원 교수 역임. 소개:타이베이 당대예술관 (Moca Taipei) 2001년에 세워진 “타이베이 당대 예술관(Moca Taipei)”은 대만 최초로 당대의 예술 진흥을 위한 박물관으로, 다양한 전시와 활동을 통해, 현대 사회의 시각 문화예술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비 여행기”를 통한 가요와 현대예술로 보여주는 노동자의 삶 이러한 신념으로, 타이베이 당대예술관(이하약칭 당대예술관)은 최근 수년간 전시회를 기획할 때마다 의식적으로 다양한 인권이슈에 관심을 보여 주어: 2017년도 대만의 헌법재판소에서 현행 민법으로는 동성결혼이 자유와 평등을 보장받지 못한다고 해석. 헌법 위반으로 간주하여 대만 입법부 (국회)에게 동성결혼 권리보호를 위해 2년내에 법규개정 및 특별법을 제정하도록 촉구.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이 대만에서 합법화되고 동성결혼의 권리를 보장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당대예술관에서는 독립 큐레이터 ‘Hu Chaosheng’씨가 만든 "광합작용- 아시아 현대 예술 동성애자 테마전"을 전시, 대만의 공식예술관에서 처음 대규모로 열린 동성애자 관련 전시로 그 중요성을 말해주었습니다. 예술가‘Zhuang Zhiwei’가 당대 예술관 앞의 광장에서 창작 전시한 작품 "어둠속의 무지개"는 어두운 구석에 숨겨진 비밀과 소리없는 외침, 불평등하다고 느끼는 그들의 마음을 글로 표현하여 시민들의 위로와 축복의 글도 함께 남기었습니다. 거대한 캐비닛은 떠들석한 대중들의 소리를 통해 서서히 반짝이며 떠오르는 무지개와 같은 퍼포먼스로 역동의 힘을 연출. 이번 전시는 태국의 방콕과 홍콩등지를 순회하여 현대예술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이야기하고 행동의 힘을 보여 주었습니다.

2022-05-23

저자 - Andy Archidian 안디 선생님은 인도네시아 국립대학교 사회정치 과학부 사회학과의 조교수이며, 무니르 하우스 인권 재단의 책임자이십니다. 무니르 인권 박물관에 대하여 무니르 인권 박물관은 2013년 동부 자바의 바투시에 설립된 ‘무니르 하우스 인권 재단’으로, 무니르 변호사가 태어나고 자란곳이며, 원래 이름은 무니르 하우스 인권 박물관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 국민, 특히 청소년들에게 평화를 사랑하고 인권을 존중하며 관용과 평등의 원칙을 수호하는 인권교육을 심어주기 위해 박물관이 건립되었습니다. 소개 1998년 5월 수하르토의 새로운 질서(New Order)체제가 무너졌습니다. 수하르토 장군이 30년 이상 집권한 후 물러나면서, 하비비(B.J. Habibie) 부대통령이 뒤를 이어 인도네시아 정치를 민주적으로 이끄는 데 전념했습니다. 새로운 질서가 무너지면서, 인도네시아에는 여러 정당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였고, 새롭게 다당제 정권 시대가 오늘날의 민주화 과정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구정권의 뿌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그 잔재가 지금의 정치에도 뿌리 깊게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1965년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인도네시아를 구하기 위한 핵심 세력으로 군사를 들고 있는데, 특히 육군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 현대에 있어 인도네시아에 대한 역사적 개념이 되었습니다. 이 역사적 내러티브는 1970년대에 이르러 군사가 정치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이후에 더 광범위하게 확장되었습니다. 내러티브는 더 이상 공산주의 운동을 진압하는 군사의 성공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독립이 네덜란드와의 투쟁에서 군사의 주요 성과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반식민주의의 운동가들이었던 스카르노(Sukarno), 하타(Hatta), 사리르(Sjahrir)와 같은 이들의 역할은 점점 잊히고, 독립전쟁속에서 활약했던 군부대의 영웅사들이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캐서린 맥그리거(Katherine McGregor, 2007)는 20세기 현대 인도네시아 역사 내러티브에 대한 연구에서 군사의 역할을 강조하는 공식 역사의 구축이 신질서시대에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묘사하기 위해, 이를 "제복을 입은 역사"라고 적절하게 설명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박물관이 진보적이고 해방적인 행동주의를 위한 용도가 아니고, 권위주의적 통치자들의 반동적인 거짓 역사의식을 위해 지배 체제에 의해 사용될 수도 있다는 단서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뒤의 배후 인물은 훗날 신질서 시대에 교육부 장관이 된 학자이자 군사 역사가인 누그로호 노토수산토(Nugroho Notosusanto)씨가 있었습니다. 그의 지휘하에 인도네시아 주요 도시에 박물관과 기념물들이 세워져, 군부대의 기여와 중요한 역할을 대중에게 상기시켜 주며 역사적 이야기를 뒷받침하게 되었습니다. 망각에 대한 투쟁 새로운 질서 체제하의 박물관은 더 이상 일반적으로 정의된 "예술적, 문화적, 역사적 또는 과학적 가치가 있는 문물을 보존하는 곳"(옥스포드사전의 정의)이 아니라, 정권의 역사적 역할을 정당화하는 권력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1998년 개혁 직후부터, 이것을 파헤치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2000년대 초가 되자,인도네시아의 독립 역사가들이 추진한 내러티브는 논쟁거리가 되었습니다. 아스비(Asvi Warman Adam)씨는 "역사 수정"을 제안한 주요 인물 중의 한 분이었습니다(Adam, 2004). 그는 군사의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수십만 명의 공산당원과 공산당원으로 추정되어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살해된 수십만 명의 이야기를 1965년에 일어난 사건과 함께 서술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새로운 물결은 여전히 학술논문과 같이 제한된 범위에만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새로운 질서의 공식담론이 ​​주류 버전이 되어, 초중학교의 역사 교과서, 영화, 특히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는 신질서 박물관과 기념물에 의해 뒷받침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도전은 경제 및 정치 위기에 처했던 1998년에 일어난 일에 대한 대중의 기억을 상기시키려는 인권 운동가와 민주화 운동으로부터 나왔습니다. 2014년 12월 10일, 트리삭티대학교(Trisakti University)의 사회운동가와 학자들은 세계 인권기념일이었던 1998년 5월 12일 교내에서 학생 시위를 하던 중 보안군에 의해 사살된 4명의 학생을 추모하기 위한 높이 3미터의 검은색 세라믹 기념비를 건립하였습니다. 한편, 전국여성폭력위원회(Komnas Perempuan)에서는 폭력과 성폭행을 당한 중국계 여성을 추모하기 위해 1998년 5월의 참살사건에 대한 비문내용을 기록하였습니다. 자원 봉사자들은 중국계 여성이 당한 성폭행 사건을 언론에 호소하여, 개혁 초기에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관련 증거를 조사하기 위해 합동조사단(TPGF)을 구성했습니다. 그러나 대규모 성폭행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찾지 못했고, 정부는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부인했습니다. 정부의 대응에 맞서고자, 사건의 피해자이자 중국계 시민인  젊은 자원 봉사자인 이타( ita Martadinata)씨는 이를 미국 의회에서 증언하려고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으로 출발하기 전, 살해된 시신으로 발견되었으며, 중국계 여성이 대거 집단으로성폭행 당했던 사건은 사람들에게 잊히게 되었습니다. 1998년 5월의 참살사건의 내용을 그린 비문은 대중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인도네시아 최서단의 아체에서는 2011년 다수의 비정부 조직(NGO)들이 과감하게 아체 인권 박물관 건립에 나섰습니다. 박물관은 규모가 아담했습니다. 단체들은 티카르 판단지역(Tikar Pandan)의 사무실 안뜰에 ‘심팡 KKA(Simpang KKA)의 항쟁 주민들이 총격에 사살된 사건, 충돌 속에서 실종된 사람들과 군인들이 자유 아체 운동의 동조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고문한 루모그동 가옥(rumoh geudong)에 대해 설명하는 게시판을 세웠습니다. 단순한 박물관이지만 선언문에 명시된 것처럼 아주 큰 사명을 부여안고 있었습니다. 선언문: 어두움 속에서의 미약한 빛이 우리에게 잊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언제나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을 살리는 성소를 지었습니다. 살다 죽고 강간당하고 학살당하고 고문과 말살 속에서 죽임을 당한 우리 아체의 남녀들이 삶을 초월한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세요!  Aceh bek le lagee njan!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요컨대, 인도네시아의 정치개혁은 공식적 이야기와는 별도로 인도네시아의 인권 운동가와 민주화 운동이 새로운 역사의 서사를 창출하도록 대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들은 "망각에 대한 저항"을 외치며, 과거에 있었던 인권유린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는인도네시아의 만연한 불처벌 문화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박물관과 기념물을 통한 망각에 반대하는 운동은 결국 정부가 이러한범죄를 묵인하는 것에 맞서는 운동으로 성장하였습니다.    무니르의 집(Omah Munir) 박물관이 사회 운동의 본거지가 된 또 다른 증거는 동부 자바에 있는 말랑(Malang) 바투(Batu)시에 건설 중인 무니르 인권 박물관입니다. 뮤니르 하우스 재단의 일원으로서 제 생각을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저명한 인권 변호사 무니르 사이드 탈리브(Munir Said Talib, 1965-2004)가 2004년 9월 7일에 네덜란드로 가던 길에 살해된 것과 같은 인도네시아의 심각한 인권 침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연구와 개혁을 통해서 인도네시아에 민주화를 위한 정치적 수도꼭지를 열었다는 사실 외에 무니르 씨의 죽음은 많은 인도네시아인에게 경종을 울리며 구 정권의 유산이 현대 생활에 여전히 뿌리 깊게 박혀 있음을 말해줍니다.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은 현장에 있는 집행자들만 벌을 받게 하고, 핵심 인물인 고위급 군사 및 정보 장교들은 법적 형을 선고받지 않았습니다. 죄가 있는 데도 벌하지 않는 현상은 무니르의 살인사건에서 다시 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2013년 인도네시아에 경찰 박물관을 막 설립했을 때 무니르의 미망인 수시와티가 연락을 해왔다. 2013년, 인도네시아에 경찰박물관 건립을 완수하자마자 저에게 무니르의 미망인 수시와티(Suciwati)여사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인도네시아의 인권 투쟁을 위한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저는 무니르와 아주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그는 저의 오랜 동료이며 제가 인도네시아에서 법률 구조연구소에서 일할 때 저를 지도해 주신 분입니다. 저는 무니르의 미망인 수시와티 여사의 제안이 아주 훌륭한 생각이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치 1980년대 아메리칸 인디언 국립 박물관 (National Museum of the American Indian)과 미국의 민권 운동(Kyle 메시지, 2013)의 경우처럼 '투쟁에 참여하는' 본거지로서 박물관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문제는 이 프로젝트에 대한 자금을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박물관의 건설은 비용이 많이 들고 건축가, 토목 기사 및 사학가의 참여가 필요하므로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습니다. 수시와티 여사께서 첫 번째 문제를 해결해주었습니다. 그녀의 동부자바의 바투시에 있는 고 무니르선생님의 집을 박물관으로 기증한 것입니다. 마당과 건물을 포함해 400제곱미터도 안 되는 집이었습니다. 작기는 작지만, 이 건물은 중대한 역사적 가치를 지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 아주 좋은 디딤목이 되었습니다. 2013년 중반까지, 수시와티 여사께서는 더욱 많은 지원을 받고자 했습니다. 무니르의 삶과 인도네시아의 인권 투쟁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박물관을 짓는 다는 소식이 입소문을 타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Lukman Hakim Syaifuddin(후에 종교부 장관이 됨)과 국무장관이 된 미디어 네트워크 경영자 Dahlan Iskan과 같이, 무니르사건에 동조하는 정치인과 공무원과 더불어 젊은 사회운동가,예술가들이 합류했습니다. 박물관의 발전은 결국 인도네시아의 민주화 운동 네트워크를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박물관을 짓는 과정은 마침내 인도네시아에서 인권을 발전시키는 새로운 길을 열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인권과 민주화의 문제는 멀고 멀다고 느꼈던 사람들이 갑자기 공동으로 프로젝트에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돈을 바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사회학자 시드니(Sidney Tarrow)씨의 생각 (2011)을 반영하듯이, 시민사회의 연합적인 행동들을 통해서, 과거에 분리된 부분들이 한데 모여 조립되듯이 이루어졌습니다. 연말까지 박물관 건물이 완공되어 2013년 12월 8일 공식적으로 “무니르의 집”이란 이름으로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그저 꿈에 불과했지만, 이제 마침내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후 박물관의 운영과 관리를 위해 박물관의 발기인으로 구성된 ‘무니르 하우스 재단법인’이 설립되었습니다. 프로젝트 ‘무니르 하우스’는 정부측에서 수십 년 동안 감춰온 역사이야기를 향해 직접 도전하였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던 역사 이야기와 반대되는 경험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방문객들이 박물관에 도착하면 박물관 건설 중일 때 유명 조각가로부터 증정 받은 변호사 무니르의 흉상이 맞이해주고 있습니다. 방문객들은 새로운 질서가 수립된 지 얼마되지 않아 인도네시아의 인권 운동을 통해서 “인권옹호 재단(YPHAM-Human Rights Care Foundation-)”과 “인도네시아 법률구조재단(YLBHI-Indonesian Legal Aid Foundation)”이 설립 탄생되었다는 일련의 역사적 이야기를 접하게 됩니다. “인권옹호 재단(YPHAM)은 공산주의 정치범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정의로운 운동을 추진하는 조직이었다는 사실은 공산주의 운동을 성공적으로 진압하였다고 자랑하는 군사 정치에 대한 공식적인 도전이기도 하였습니다. 박물관에는 여성 근로자 마시나(Marsinah)의 사건,즉 파업 데모에 주도하였다고 연루되어 군사정치에서 심문을 받던 중 목숨 잃은 그녀의 이야기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마시나의 이야기를 다루게 된 것은 방문객들로 하여금 오늘날 인도네시아의 발전과 성취는 이 근로자들의 땀과 피로 얻어 낸 것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밖의 이야기에서는 파푸아와동티모르(현재는 독립국)에서 있었던 강제 실종 및 정치적 살인과 유사한 인도네시아의 심각한 인권침해 사건을 강조하였습니다. 물론 무니르씨의 개인 생활과 인권 옹호자로서의 삶의 여정, 그리고 그가 당한 살인사건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무니르 하우스”는 2013년 12월 8일 정식적으로 오픈하면서 모든 배경과 연령대의 방문객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생과 젊은 학생들이 역시 가장 많은 방문객 그룹입니다. 그들은 박물관 방문을 인권에 대한 배움과 대학 교육의 일환으로 보고 있습니다. 5년 후를 바라보며 우리 박물관이 인도네시아인의 삶에 중요한 보편적인 인권 규범을 주입하여 인권을 홍보하는 기관으로 효과적인 중개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에 매우 흥미롭습니다.   무니르 인권 박물관 2018년 ‘무니르 관리 위원회’는 건물, 기초 시설, 프로그램 및 지원 시스템 측면에서 무니르 박물관을 보다 더 큰 인권 박물관으로 향상되고 발전시키기 위해 정부와  협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단계는 매우 성공적이었고 정부는 박물관 건립 자금을 약속했으며 자금은 동부자바 지방정부에서 제공하고 토지는 바투시 정부에서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관리 위원회’는 이와 관련하여 세 가지 주요 활동으로 시민사회의 다른 구성원과의 광범위한 협력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첫째, 인도네시아 건축가 협회(AAI)와 협력하여 인권 박물관의 중요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박물관 디자인 공모를 개최하게 됩니다. 건축디자이너인 아이하마이드 (Achmad Deni Tardiyana-Apep이라고도 함-)씨는 환경 친화적이고 포괄적인 카리스마 넘치는 디자인으로 유명합니다. 둘째, ‘무니르하우스 재단법인’은 또한 자카르타 예술대학(Jakarta Arts Institute)과 제휴하여 박물관에 전시된 예술작품 창작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셋째, 무니르 하우스는 또한 친환경 운동가, 언론인, 원주민, 장애인, 여성 인권 운동가와 함께 박물관에 대한 이야기와 주제를 탐구하는 상담회의를 마련했습니다.회의상의 요점은 박물관전시 발전의 핵심 주제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1층은 어린이들을 위한 특별 디자인으로, 대중생활속에서의 중요한 가치관 즉 관용·자유·평등에 대하여 인식시켜 주고 있으며, 2층은 인도네시아 시민사회단체가 제기한 주요 인권침해 사건·환경·토착민·여성·언론자유 등에 대한 인도네시아 인권 역사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3층은 변호사 무니르선생의 생애와 그가 추진한 활동을 전시, 3층의 마지막 전시실에는 실종인구에 대한 것을 전시하여 방문객들이 인도네시아의 인권 문제에 대해 성찰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정부와 협력함에 있어, 특히 인권 문제와 관련하여 전시의 독립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앞으로도 인권박물관이 정의롭고 이타적인 태도로 인도네시아 역사의 주요 인권 폭력에 맞서 싸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점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실제로 약간의 조정과 변화를 주었습니다. 우선 박물관의 이름을 “무니르 인권박물관”으로 변경했습니다. 이것은 박물관이 과거에 전시했던 인권 운동가들의 삶의 특정 주제뿐 아니라 더 광범위한 인권문제를 다루기를 원하는 의미를 갖게 된것으로, 정부측의 공식 관점을 수용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전시상의 독립성에 있어도, 인도네시아의 정치적 분위기가 그러한 독립성을 위해 아직도 여전히 열려 있는 공간이 있다는 점을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겠지만, 우리가 걸어온 경험을 통해 한 가지 확실하게 된 것은 박물관과 역사적 기념물이 개혁시대의 인권운동가와 민주화운동을 위한 중요한 사회운동의 장소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인권 가치의 중요성에 대한 효과적인 접근으로, 젊은 세대에 주입되었는지에 대한 여부는 시간이 말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