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역사 속 실향민들의 기억: 망명 티베트인의 삶의 궤적
저자 소개: 장원신
장원신 씨는 국립대만 역사박물관 전시팀의 연구 조교입니다. 박물관 및 국제 커뮤니티 간의 협력과 공동창작을 담당하며, 이 시대의 이슈와 어려웠던 역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대만 위안부, 부당한 역사의 현장, 동남아 신주민과 이주 노동자에 대한 논문 발표와 전시회 큐레이팅을 담당하여 왔으며, 국제양심유적지 기록정정 프로젝트 (Correcting the Record)와 강제 실향민들의 기억에 의한 프로젝트(In Their Own Voices- Victim-Centered Documentation and Memorialization of Forced Displacement)에 참여하여 담당해 왔습니다.
국립대만역사박물관 소개
역사박물관으로 불리는 국립대만 역사박물관은 "세계 속에 있는 대만"을 시야로, 박물관 역사학의 바탕하에 대만 문화유물의 보존과 활용, 역사 문제를 위한 대화, 국제 협력, 지적 평등권, 다원 문화 가치의 추구, 다각적 관점과 종족 간의 시야로 사람과 토지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대만 문화의 정체성 추진과 이 시대의 문제점을 대면하고 있는 국가차원의 역사박물관입니다.
대만 역사 속 실향민들의 기억: 망명 티베트인의 삶의 궤적
1. 대만의 다민족 역사
대만의 역사는 다양한 민족들이 공동으로 일구어 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적인 역사 과정을 보면, 생존을 위해서 개척을 위한 선교와 식민지, 전쟁 등의 이유로 각지에서 대만에 이주해 오며 정착하여 발전해 왔습니다. 지난 30년간 세계화의 물결로 동남아의 결혼 이민자와 이주 노동자들이 대만을 찾았고, 이로 인해 대만의 이민 사회는 그 다양성이 더 풍부해졌습니다. 국립대만 역사박물관은 2013년부터 '사방 팔방에서 온 : 근대 대만 이민자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특별 전시를 기획하였고, 2017년에는 '신 대만인: 이주 근로자들의 대만에서의 생활'을 주제로 특별전시를 기획하여, 타임라인을 타고, 다국적 가정과 개인이 대만을 오가면서 일어난 이야기들을 다루었습니다. 이주민들과 다년간 같이 함께 작업을 하면서 얻어진 경험을 바탕으로, 2023년 대만의 '비국민’ 커뮤니티 전시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역사적으로 숨겨졌던 실향민의 이야기에 주목하였습니다.
2. 대만 역사와 이 시대의 “비시민” 들
17세기부터 중국 청나라의 중 말엽까지는 대만 사회에 유동성이 높은 국적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은 대만과 중국을 번번이 오고 갔으나, 중국의 제국체제에 입적이 되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대만 국경이 엄격했던 통제로부터 계엄령 해제의 개방을 맞이하여 세계화된 산업체인에 가담하게 되면서 인적으로 물질적으로 국경을 초월한 교류가 일반화 되었습니다. 현대의 이른바 “국가”발전은 국경의 개방으로 보이지만, 개개인의 국적이나, 계층, 인종과 성별에 따라, 국경을 넘는 비용과 문턱은 각각 다릅니다. 국경에서 맴돌고 있는 여러나라의 이동자들 중에는 자신의 국가이거나 개인적 어려움으로, 혹은 보다 나은 미래를 찾아 이주해온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떠돌게 된 실향민이나 가정은 대만에 머물면서, 대만의 “비시민”이 되어 안착하여 지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시 또 안착지를 찾아 떠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이름 조차 알리지 않고 이리 저리 숨어 살며 지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현대의 국가발전과 세계적으로 지속되는 갈등과 억업속에서 정치와 법적인 문제로 “비 시민”이된 개인 또는 가정은 서서히 대만사회의 일부가 되었으며, 이중에도 눈에 띠는 것이 망명 티베트인들로, 그들에 대한 대만에서의 역사와 현실은 세계 각지에 흩어 있는 실향자들의 단순하지 않은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3. 대만의 망명 티베트인
유엔 통계에 따르면 정치적 요인과 법률문제로, 국적을 잃은 사람들을 포함해서, 전 세계의 디아스포라 실향민 수는 1억2천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현재 세계 각처에서 16만 명 이상의 티베트인이 망명 생활을 하고 있으며, 대다수가 인도와 네팔에 살고 있습니다. 대만에 온 티베트인은 약 1,000여명으로 중국에서 국민당 정부와 함께 건너온 소수의 티베트인 외에는 대다수가 대만의 권위주의 통치 시대 장개석 정부의 '반공 전선'이라는 명목으로 소집되어 대만을 찾게 된 것입니다. 계엄령이 해제되고 난 후, 이덩휘총통의 집권 당시,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접견하면서, 대만과 티베트 망명정부의 관계가 완화되었고 해외 피신을 위한 종착지로 대만도 티베트 망명정부의 선택 사항이 되었습니다. 대만을 찾은 티베트인은 일몰 조항으로 대만에서 합법적인 거주권과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 중에는 법률 관계상 어쩔 수 없이 불법체류로 있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1980년대 이후 티베트 불교가 대만에서 한때 번창한 바도 있었지만, 대만의 망명 티베트인들의 소리는 서서히 대만의 역사적 서사에서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인도와 네팔로부터 망명하여 대만에 거주한 티베트인 2세는 어려서부터 영어와 티베트어를 위주로 교육받아, '한족'이 대다수인 대만사회에 진출하기란 쉽지 않았으며, 언어, 음식, 생활 습관상의 차이도 어려움이 있고, 그들의 자녀도 대만에서 티베트 교육이나 문화를 접하기는 힘들었습니다. 많은 망명 티베트인은 아직도 고향에 친족들이 있습니다. 최근 수년 중국에서는 티베트지역의 종교, 언어, 글과 문화상으로, 중국 공산당의 극심한 탄압을 받고 있어, 티베트인들이 대만의 공공영역에서 모습을 드러내기란 더욱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불리한 요인으로 인해, 티베트 실향민이 주류 사회에 통합되는 것은 어렵지만, 다음 세대를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언어와 문화를 전수하고자, 단단한 내부 결속력으로, 불법 전파와 티베트어 지도 등 모임을 통해 서로 단결[1]하고 있습니다.
4. 전시 계획과 상처 주지 않는 원칙
대만 역사박물관 전시팀은 대만 주재 티베트 망명정부 사무소인 - 달라이 라마 티베트 종교재단의 도움아래, 서서히 상호 간의 신뢰관계를 구축해 왔습니다. 국제양심유적지연합(International Coalition of Sites of Conscience, ICSC)의 "강제 실향민을 위한 기억 프로젝트" 의 전시를 통해서, ICSC의 지도에 따라 ‘상처주지 않는 원칙(Do-No-Harm Principle)’으로 공동 창작 작업을 하면서 그들에게 다시 또 아픔(Re-traumatize)을 되새기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즉 참여자는 자유롭게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탈퇴할 수 있었으며 제공된 정보를 언제든지 거두어 들일 수 있게 하였고, 박물관측에서도 정보 공개전에 반드시 당사자로부터 동의를 받았으며, 정보의 적절한 활용에서도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전시과정의 모든 단계에서 참여자 개인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이러한 원칙들을 지켰습니다.
참여자들로 하여금 안전 보장이 된 환경에서 개개인의 생명 경험을 마음 편히 공유하도록, 대만역사박물관팀은 대만에 망명한 티베트 음악가들을 초대하여 함께 음악을 창작하며 음식을 만들며 민감한 정보 노출은 피하면서 참여자들에게 격려가 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참여자 가운데는 티베트지역의 산을 넘어 인도의 다람살라로 건너와 티베트 지도자를 따른 사람도 있고, 인도나 네팔에서 태어난 티베트 2세들이 일정한 방법으로 대만 여권을 취득해 합법적인 신분으로 정착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대만을 찾아온 길은 모두 달랐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망명 티베트인으로서 대만에 입국 시, 대만 정부의 엄격한 통제를 받아야 했으며, 정착할 수 있는 안식처를 위해 거리로 나와 호소했던 과정을 겪어야 했습니다.
대만에 있는 티베트 망명자의 삶의 궤적이, 겉으로 보기에는 대다수 대만사람들과 다른 것 같지만, 대만의 역사를 돌아보면 탄압의 역사에서 겪었던 유사성과 공통성을 느낄 수 있으며, 대만 섬의 역사와 기억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