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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누(Ainu)민족으로 산다는 것 ——외할머니의 가르침과 박물관에서 전파하고 싶은 것들——

押野 朱美(오시노 아케미)

일본 홋카이도 무카와지역 아이누 문화를 전문으로 전승하고 계신 분으로, 국립아이누민족박물관 학예 연구부의 학예사를 역임. 현재“민족공생상징공간(즉 우포포이)” 의 운영본부 ‘문화진흥부’ 체험교육과에서 아이누 문화 전문가로서, 교육체험 프로그램 기획, 운영 및 방문객을 대상으로 문화해설과 더불어 직접 공연에도 참여하고 계십니다. 한편으로  전통마을 "코탄(Cotan)"부락의 지도자이시며, 아이누 전통예능의 아티스트로, 에사시 오이와케(江差현지의 민요)스승이시기도 합니다.
 

민족 공생 상징공간 “우포포이”에 대하여

민족 공생 상징공간인 “우포포이”는2020년에 세워진 국립기관으로, 아이누의 역사와 문화를 학습, 전파하는 장소로, 아이누문화의 계승, 부흥, 창조적인 거점입니다. 선주민족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차별없이 다양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세워나가자는 목표로 세워졌습니다.

“우포포이”에는 ‘국립 아이누 민족박물관’, ‘국립 민족 공생공원’과 ‘위령시설’이 있습니다. 국립공원은 ‘야외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을 지녀, 교류체험관, 학습관, 작업실 및 옛날의 생활모습을 체험할 수 있는 전통 코탄 등의 다양한 시설에서 아이누민족의 역사, 문화, 음식, 주거 생활과 예능이나 공예에 대한 체험을 통하여 학습하는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우포포이”가 위치한 시라오이쵸 마을은 적어도 약150년전부터 현지에 살던 아이누족이 자신의 문화를 전파하던 곳이었습니다.1960년대에 관광시설인 “포로토 코탄(뜻:큰 호숫가 마을)”의 새로운 정돈을 시작으로, 1984년에 아이누 민족박물관이 개관되었습니다. 사립으로 운영하던 이 박물관은 2018년에 폐관하게 되고, 그후에 정부기관이던 공익재단법인 ‘아이누문화진흥・연구추진기구’와, “포로토 코탄”을 운영하던 일반 재단법인 ‘아이누민족박물관’이 합병하여, 2020년 국립기관으로서의 “우포포이”를 오픈하여, 지금의 운영체제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나의 성장

저는 1985년, 홋카이도 남부의 무카와정(무카와쵸)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누이고, 아버지는 아이누가 아니었습니다. 저에게는 언니와 오빠 그리고 저와 쌍둥이인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제가 태어나 자란집은 어머니 쪽의 선조들이 오랫동안 살아왔던 곳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저희 쌍둥이자매는 외할머니의 영향을 받아, 무카와쵸 현지의 아이누 문화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쌍둥이 여동생과는 항상 마음이 하나되어, 똑같이 아이누 문화를 배우고 익히며, 아이누족으로서의 기쁨과 아이누라서 겪는 어려움을 함께 해왔습니다. 여동생은 “아이누로 산다는 것”이라는 타이틀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전통식 코탄마을에서 문화해설 중인 필자 출처: 아이누민족문화재단

전통식 코탄마을에서 문화해설 중인 필자 출처: 아이누민족문화재단

나의 직업

저는 현재 공익재단법인 ‘아이누민족문화재단’의 문화 담당직원으로, ‘민족공생상징공간’인 “우포포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우포포이”는 홋카이도 남부 시라오이마을에 세워진 문화기관이며, 최초로 아이누문화를 전문으로 소개하기 위해 설립된 국립시설입니다.

“우포포이”의 설립목적은 ‘아이누 문화의 부흥과 창조기지’로 있는 것, 또는 ‘미래를 위해서, 선주민족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차별없이 다양하고 풍요로운 문화를 갖는 활력 충만한 사회를 만들자는 상징’이 목적입니다.(출처:우포포이 웹사이트[1]). “우포포이” 에는 국립 아이누민족박물관과 국립 민족공생공원이 있습니다. 이 공원은 야외 박물관으로, 교류체험관을 비롯한 학습관, 작업실, 옛날에 살던 모습을 체험하는 전통식 코탄마을 등 다양한 시설과 함께 아이누민족의 역사와 문화, 의식주 그리고 예능이나 공예를 배우고 체험하는 학습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우포포이”는 2020년 개관하였습니다. 그 배경에는 오랜 세월을 걸쳐, 아이누 민족이 공식적으로 일본 법률상의 “선주민족”이라는 승인을 받은 것입니다. 국립시설로 개관한 지는 3년이지만 ‘시라오이’에는 원래부터 아이누족이 스스로 운영하던 사립박물관 ‘아이누민족박물관’이 있었고, 박물관 바로 앞에는 포로토 호수가 있어 “포로토 코탄”(코탄은 아이누어로 부락을 의미)이라 명칭하게 되었습니다. 홋카이도에는 이렇게 아이누민족이 자신의 문화를 알리기 위해 세워진 박물관과 관광명소가 여러 개 있는데 그중 시라오이(白老)가 국립시설의 건설 후보지로 선정된 것입니다. 2018년정부기관인 공익재단법인 ‘아이누문화진흥・연구추진기구’와 ‘포로토 코탄’을 운영해오던 일반재단법인 ‘아이누민족박물관’이 합병하게 되어, 지금의 운영체제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저는 합병하기 전인 2013년4월부터 일반재단법인 ‘아이누민족박물관’에서 일해 왔습니다. 지금은 “우포포이”에서 주요 업무를 맡아, 옛날의 생활 정경을 체험할 수 있는 “전통마을 코탄”의 방문자들에게 아이누민족의 전통 생활방식에 대한 해설과 아이누의 전통 예능에 대한 소개를 맡고 있습니다.

민족공생상징공간 우포포이의 전경 ©아이누 민족문화재단/개략도

민족공생상징공간 우포포이의 전경 ©아이누 민족문화재단/개략도

전통식 코탄마을

전통식 코탄마을

국립아이누민족박물관과 기본전시실 © 국립아이누민족박물관

국립아이누민족박물관과 기본전시실 © 국립아이누민족박물관

국립아이누민족박물관과 기본전시실 © 국립아이누민족박물관

국립아이누민족박물관과 기본전시실 © 국립아이누민족박물관

아이누민족으로 산다는 것   ——그 계기——

제가 아이누문화를 몸소 실천하고, 이를 소개하는 일을 하게 된 계기는 저희 외할머니의 영향이 컸습니다. 저의 아버지께서는 제가 5살 때 돌아가셨고, 그후 저희는 외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시간이 무척 많아 졌습니다.

외할머니께서는1926년에 태어나, 7살이 될 때까지 아이누의 전통 가옥 “치세”에서 살고 계셨습니다. “치세”란 아이누어로 “집”을 의미합니다. 치세를 짓는 건자재는 지역에 따라 다르게 사용하는데 저희 외할머니께서는 ‘가야부키(짚)’으로 지은 치세에서 사셨습니다. 외할머니의 부모 즉 저희 증조 외할머니, 증조 외할아버지는 항상 외할머니와 아이누말로 대화를 하셔서 외할머니께서는 아이누어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외할머니와 살고 있는 동안 저희 쌍둥이자매는 외할머니로부터 간단한 아이누어와 아이누 노래나 춤 같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외할머니께서는 아이누로 살면서 그동안 겪었던 고난과 경험을 이야기 해주셨고, 외할머니께서 증조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로부터 이어온 아이누적 세계관 등 많은 것들을 저희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와 외할머니 (2022년에 서거) 사진:필자 제공

나와 외할머니 (2022년에 서거) 사진:필자 제공

“우포포이”에 재건한 아이누의 전통가옥 ‘치세’ 사진:필자 제공

“우포포이”에 재건한 아이누의 전통가옥 ‘치세’ 사진:필자 제공

아이누민족으로 산다는 것   ——계승——

저희 외할머니께서는 노래와 무용을 가르쳐주면서, 그녀가 내려받아 이어온 아이누문화를 저희 쌍둥이 자매에게 계승시켜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아이누에서는 자연계의 모든 것이 “카무이 (kamuy)”라고 합니다. 카무이는 “신”과 같은 존재로서, 좋은 카무이만 있을 뿐 아니라, 나쁜 카무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예로, 불을 “아페 후치 카무이”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와 아주 가까운 존경스런 할머니 카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바라는 게 있다면 이를 꼭 할머니신인 “아페 후치 카무이”께 기도하면, 이를 할머니 카무이가 다른 카무이에게 우리의 기도를 전달해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면서 이야기를 서술하는 전통 ‘구승문예(口承文芸)를 아이누어로 ‘유카라’라고 합니다. 외할머니로부터 우리 쌍둥이가 내려 받은 ‘유카라’는 “아페 후치 카무이”를 주인공으로 하는데, 외할머니께서는 선조들이 ‘유카라’를 통해서 후세들에게 삶의 지혜와 도덕을 대대로 익히도록 하였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외에도, 동식물이나,바다와 물 그리고 산과 같은 대자연의 모든 것들을 카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쁜 카무이라 하면, 요즘 전세계에 유행되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전염병을 가져오는 카무이로, ‘파요카 카무이’라고 합니다. 외할머니께서는 이러한 전염병을 내쫓기 위한 기도나 무용에 대해서도 우리 쌍둥이 자매가 익히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박물관과 아이누문화의 선양을 위한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는 많은 자장가들을 소개하였고 노래를 부르며 이야기를 서술하였습니다. 노래속의 가사나, 가사가 지닌 의미 등, 이것의 표현방식 모두가 외할머니께서 저희 쌍둥이에게 철저히 가르쳐 주신 것들입니다.

노래와 이야기뿐 아니라, 외할머니께서 아주 소중히 여겨오시던 것이 있는데 ‘타마사이’라고 하는 아이누족 여성들이 특별한 날에 목에 거는 목걸이 입니다. 외할머니께서는 자신이 스무 몇 살때 90세되는 이모 외할머니로 부터 ‘타마사이’를 내려받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나와 여동생이 물려받아서 이것을 우포포이 국립 아이누 민족박물관 기본전시실 “탐구전시 탬파 탬파(Tempa Tempa)”에 우리 사진과 함께 전시하고 있습니다.

탐구전시 탬파 탬파(Tempa Tempa)에 전시된 오시노(押野)가문의 ‘타마사이’목걸이 ©국립아이누민족박물관

탐구전시 탬파 탬파(Tempa Tempa)에 전시된 오시노(押野)가문의 ‘타마사이’목걸이 ©국립아이누민족박물관

탐구용 전시 탬파 탬파(Tempa Tempa) ©국립아이누민족박물관

탐구용 전시 탬파 탬파(Tempa Tempa) ©국립아이누민족박물관

아이누민족으로 산다는 것  ——전승——

제가 2013년부터 일하기 시작한 ‘아이누민족박물관’은 ‘우포포이’의 전신으로, 우포포이가 세워진 토지에 약60년전부터 처음 관광시설로 세워져, 시라오이의 아이누민족이 운영해 왔습니다. 시라오이쵸는 저희가 태어나 자란 무카와쵸와 같이 오래전부터 아이누문화가 깊이 뿌리 잡은 땅으로, 이 박물관은 오랫동안 시라오이의 아이누문화를 전승하며 알려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포로토 코탄’을 방문한 것은 9살인가 10살 때였을 겁니다. 외할머니와 이모 외할머니께서 저를 데리고 그 당시의 ‘포로토 코탄’을 가셨습니다. 외할머니와 이모 외할머니께서는 무가와쵸의 아이누문화를 전달하는 전승자의 역활을 하시면서, 당시 아이누민족박물관에서 진행하던 아이누어와 아이누 이야기에 대한 연구에 여러모로 협력을 하고 있어서, 매번 저희 쌍둥이 자매를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반년에 한번씩 갔던 것 같습니다.

외할머니와 이모 외할머니께서 박물관 연구에 응하는 시간동안 우리 쌍둥이 둘은 야외에서 공연하는 노래와 무용에 넋이 나가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 쌍둥이 둘을 푹 빠지게 했던 것은 “무쿠리(mukkur)”라고 하는 악기의 음색이었습니다. “묵구리”는 구금이라는 악기로, 소재도 여러가지 있는데 ‘시라오이’에서 연주하던 것은 대나무로 만든 악기였습니다. 이 악기는 연주방식도 고정되지 않아,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음색을 낼 수가 있었습니다. 저희는 감상만 할 뿐 아니라, 악기의 사용방법과 소리내는 방법까지 그곳의 직원들이 가르쳐 주어 배울 수 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윤무(輪舞-와오도리-)춤과 새들의 모습을 표현하는 춤에도 열중했습니다. 무카와마을의 아이누민족 예능에도 와오도리, 새의 모습을 표현하는 춤이 있었지만, ‘포로토 코탄’에서 전승하고 있던 춤은, 저희 쌍둥이에게 정말 “멋지다”라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당시 일하던 직원들은 지금의 우포포이 처럼 웃음이 가득하고 멋스러운 오빠, 언니, 아저씨, 아줌마들로, 저희들에게 아주 친절히 대해주셨습니다. 그 중에도 “굉장히 멋진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지금 우포포이에서 운영본부장을 맡고 계십니다. 여성이면서, 노래와 춤도 훌륭하고, 아이누문화를 아주 점잖게 설명해 주셨던 그 분은 어린 우리 쌍둥이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포로토 코탄의 문화를 접촉하면서 우리 쌍둥이는 무카와의 예능을 더욱더 열심히 익히자고 서로 다짐했습니다.

포로토 코탄을 빈번히 방문하면서 우리 쌍둥이는 “우리가 크면 여기서 일하자” 라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아이누문화를 해설하는 현지활동에도 힘쓰며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습니다. 대학교에서는 본격적으로 아이누문화의 역사와 언어 등을 배웠고, 학예 연구사 자격도 얻게 되었습니다. 대학졸업 후, 아이누문화와는 무관한 직업을 가졌으나, 여전히 아이누문화의 홍보활동은 계속하였고, 마침내 2013년에 ‘포로토 코탄’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서는 ‘아이누 문화’의 전면적이고 기본적인 것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본격적으로 아이누어를 배우게 된 것이 대학에서 였으며, 배운 것을 바탕으로 외할머니가 말해 주셨던 아이누어를 비교하면서, 더욱 깊이 파고 들어가는 기분으로 무카와쵸의 아이누 사투리를 배워 나갔습니다. 기본적인 것들을 철저하게 배우게 된 것은 대학에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나, 즉 저희 쌍둥이가 아이누 민족의 신분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저희와 함께 사신 외할머니의 덕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쌍둥이가 철이 들기전부터 외할머니께서는 생활속의 도덕관념과 대자연에 대한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저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대학에서 배운 아이누 문화는 저에게 기본적인 요약이라고 말 할 수 있고 가정생활 속에서 배운 아이누 문화는 그것에 대한 세부사항(무카와쵸마을과 저희집의 아이누 문화)이 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 박물관에서 일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도 외할머니로부터 배운 아이누 문화, 제 자신이 계승한 아이누 문화를 더욱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나아가 우리 자신의 뿌리인 무카와쵸 마을의 아이누 문화를 전승시키고 선양하는 것으로, 그 중에도 특히 제가 잘하는 노래와 무용의 예능을 전문으로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아이누 문화라고 해도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사투리를 사용한다든가, 집을 짓는 자재도 서로 다른 것들을 사용하여, 간단히 “아이누 문화”로 일괄 짖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이것 또한 ‘아이누 문화’만의 깊이 있고 재미있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차이점은 문헌 등의 자료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저같은 경우에는 ‘시라오이’에서 일하면서 선배나 동료들로부터 시라오이의 독특한 문화를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 지역만이 갖는 아이누 문화’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더욱더 솟구치게 되었으며, 한편으로는 제가 있는 곳은 또 어떨까? 하는 마음에, 아이누로서 의 정체성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아이누민족으로 산다는 것 ——미래를 향하여——

현재 저는 “우포포이”에 재건된 “치세”에서, 방문자들에게 아이누 문화의 과거와 현재의 생활을 소개하고 예능에 대한 해설을 위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일상업무에서 고객과 대화를 하면 항상 받게 되는 질문으로: “지금도 아이누가 살고 있습니까?어떤식으로 살고 있죠?”입니다. 비록 제가 대답하기를 : “제가 아이누족이고, 여러분들 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해도, 여전히 말하기를 “아이누는 이젠 없어” 라고 하던가 “아이누는 아직도 옛날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어” 라는 편견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누족으로서 “우포포이”에서의 역활이 저희집에서 전해 내려온 아이누 문화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지금 여전히 살고 있는 아이누민족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를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포포이”에는 일본인외에도, 해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포포이”에는 아이누족만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외국직원들도 일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비 아이누족,아이누족, 외국인 그리고 신체장애인를 포함하여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 “우포포이 “의 설립이념인 ‘민족공생’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지금의 아이누민족”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은, 세계 각지에 있는 다양한 민족과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과 같습니다. “민족공생”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는 배려와 포용하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제 자신의 민족 정체성을 바탕으로, 지속해서 아이누 문화를 선양해 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