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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권리. 인간의 가치.

그림 1: 국제인권박물관연맹

그림 1: 국제인권박물관연맹

저자 소개:

Tracy Puklowski 씨는 현재 호주 앨리스스프링스에 거주하고 있으며, 호주 최초로 세워진 국립원주민미술관의 발전을 책임지고 있다. 전 직책으로는 타즈매니아 론세스톤시의 크리에이티브 아트 및 문화 서비스의 소장직을 맡았으며, 호주 최대의 지역문화 기관인 퀸빅토리아박물관과 미술관 관장직을 맡았다.호주로 이주하기 전, Tracy는 뉴질랜드의 GLAM 산업(미술관·도서관·아카이브· 도서관)에서 고위 임원직으로 일함. 그녀는 게티 뮤지엄 리더십 대학원(Getty’s Museum Leadership Institute)을 졸업했다.

박물관 소개:

앨리스 스프링스(현지 원주민들은‘무반투야(Mparntwe)’라 부름)에 위치한 호주국립원주민박물관은 랜드마크적인 명소가 되고 있다. 호주의 심장부에 자리 잡고 있는 새로운 공간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을 보존하고 있는 문화를 보여 주며, 호주원주민 민족의 전시공간을 제공하며, 그들의 예술을 통해서 그들이 이룩해낸 것들을 홍보하고 있다.

박물관은 호주의 진실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거버넌스 혹은 관리 그리고 노동력에 있어 많은 원주민들이 확보되도록 하고 있다. 그러므로 박물관은 호주 원주민을 위한 도구로서, 그들이 세계를 향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도록 하고 있으며, 그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할 것인가를 위해, 능동적인 에너지를 불어주고 있다.


인권에 관하여, 세계적으로 박물관의 담론과 실무의 중요성을 알아가던 매우 중요한 시점인 2019년에 국제인권박물관연맹 아시아태평양지부(FIHRM-Asia Pacific)가 설립되었습니다. 지역에 초점을 두고 설립한 국제인권박물관연맹지부는 항상 소홀히 되는 지역의 소리를 확대해 주었으며, 특정 인권 이슈에 대한 분별과 처리에 있어서도 중요한 플랫폼으로서의 기능을 하였습니다. 저는 이글을 통해, 국제인권박물관연맹과의 인연을 돌아보면서, 모든 이들을 위한 인권 문제는 주변에서 핵심으로 가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2010년 국제인권박물관 연맹의 설립 당시, 영광스럽게도 제가 창립멤버로 요청받았습니다. 연맹의 설립은 흥미롭고도 시기적절하였으며, 박물관 각계에서도 사회적 정의에 대해 전면적으로 부각되던 시기이었지만, 최초로 국제적인 힘을 합하여 인권에 대응하는 것으로, 제 마음 한편으로는 조마조마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제가 일한 뉴질랜드 국립박물관 -Museum of New Zealand Te Papa Tongarewa.(약칭 Te Papa)- 을 일컬어, “인권박물관”이라고 선포할 수 있을까? 인권박물관이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 걸까? 저는 우리박물관이 자칫 잘못하여 모조품이 되어 버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우리 박물관의 역사와 가치를 돌아보면서 얻은 결론은 ‘인권박물관은 반드시 어떤 명확한 인권적 사명이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저희 Te Papa박물관은 언제나 다양성과 포용성을 추진하는 것에 힘을 다해 왔으며, 기꺼이 곤란한 이슈들을 다루는 것을 원했다는 점에서도, 인권의 행렬에 들어설 자격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015년 제가 국제인권박물관 연맹 회의에서 의장직을 맡았을 때, 이러한 기록을 했습니다:

「Te Papa박물관에 사회적 정의, 인권 및 가장 넓은 의미의 박물관 접근성은 부가적인 것이 아니며, 선택사항이나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박물관에서 전해 내려온 핵심사상으로, 마오리족의 말로 말하면 ‘화카파파(whakapapa)라고합니다.  1992년에 뉴질랜드의 국립 박물관법이 통과되면서, 언제나  갈 길을 잘 찾아내던 우리 박물관에 확고한 기반을 형성했습니다…우리 박물관 이사회에서 ‘ 2중 문화 정책’을 채택하고 나서부터... 어떤 분야이든 박물관에서는 ‘2중 문화’로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Te Papa박물관의 비전이「마음의 변화, 사고의 변화, 삶의 변화」이었고, 저희는 원래 곤란한 이슈들을 잘 다루던 박물관이었기 때문에,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들이나, 다양한 민족들을 위해, 심지어 박물관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도 창의적이고 새로운 체험을 안겨 주기 위하여, 우리만의 입장을 반드시 세워야만 했습니다. 
국제인권박물관연맹의 웹사이트에도 명시된 바와 같이, 인권박물관은 전통적 박물관의 사고나 실무에 충분히 도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희Te Papa는 인권 박물관이며, 9월 대표님 방문의 영접을 기대하고 있습니다.」[1]

흥미롭게도, 제가 이 글을 쓰면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2010년에 그렇게 생각했듯이 일부 박물관들은 ‘인권’이란 것이 그렇게 꼭 필요한 분야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인권을 추진해야만 한다는 정당한 이유의 설득이 필요합니다.

또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현재 박물관이 운영되고 있는 맥락은 정말 '빠르고 극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당시의저는 뉴질랜드의 문화와 정치적 면모만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앞으로 수년 후 이렇게 극적으로 빠른 변화가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우리가 사는 세상을 휩쓸고 있으며, 삶의 패러다임이 변화되어, 이에 대한 책임을 우리 인류 모두가 함께해야 하므로, 아주 근본적인 대응이 필요합니다.

현재의 박물관이 "21세기의 복잡성과 당대 박물관의 책임과 약속 및 미래를 향한 도전과 비전”에 대하여 적절하게 정의를 내리지 못하자, 국제박물관협회(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s약칭 ICOM )는 박물관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위해, 2019년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2]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이 어리둥절한 상황에서 논쟁하였으며,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빚어진 마찰로 인해 분노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년간의 이슈가 다시 논의되는 2022년 프라하 대회에서 박물관 각계의 좋은연대가 이뤄졌으면 합니다.

하긴 그렇죠. 지금 세계 각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박물관을 찾는 관객과 이익관계에 있는 커뮤니티들이 그저 가만히 앉아서 ‘박물관이 자신을 올바르게 정의했는지’를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최근 수년 동안의 변화와 도전은 우리들 문 앞까지 와있을 뿐 아니라 전시공간을 오고 가면서, 서적 등을 검열하면서, 우리를 떨리게 하고 있습니다.

세계인권선언 제27조의1

모든 사람은 사회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향유하며 과학적 진보와 그것이 만들어낸 혜택을 누리는 권리를 갖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팬데믹에 깊이 빠져있으며, 모두가 익숙해 있던 생활패턴을 철저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단순한 "회전"뿐 아니라 더욱더 유연한 모습으로 대응하여 도시 봉쇄 등의 어려움을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에너지로서 온라인 학습이나 체험 그리고 참여 등을 통하여, 전시공간과 관람객들을 관리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이 중에 일부 박물관은 영구적으로 문을 닫아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팬데믹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는 공평하지만, 빈곤층과 취약계층에게 가져오는 불이익을 더욱 악화시키었습니다. 

따라서 영구적으로 문을 닫아야 할 박물관은 항상 자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소규모 박물관이었습니다. 이 박물관들은 작고긴밀한 공동체들의 이야기를 기억해 주며 그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여 사람들에게 전달하였습니다.

이는 지역사회를 위해 힘을 다하여, 그들의 기억을 보존해 주고 이야기를 공유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박물관 접근성을 방해하는 장벽을 지속해서 제거해야 하며, 우리가 지배하기보다는 공동으로 창조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커뮤니티와 개인들이 협력하여 우리 후손들에게 과거에 이러한 비상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 그토록 심했던 인류 공동의 경험에서 재건과 치유를 위해 협력하는 것이, 우리 박물관이 맞서야 할 도전이며 영광스러움이기도 합니다. 

예술이 지닌 치유력이란 새로운 개념이 아니며, 트라우마를 겪은 후, 박물관은 하나의 안전한 (또 필요한) 처소로, 사람들이 모일 수 있고, 질문할 수 있으며 상처받은 사건을 기념할 수 있다는 것도 새로운 개념이 아닙니다. 지금은 그것이 더욱더 깊어지고 있으며, 지역화된 것이 세계화되어 가고 있고, 세계화된 것이 지역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세계인권선언 제3조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이나 자유 및 신변의 안전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제25조의1

모든 사람은 의복, 음식, 주택, 의약품 및 필요한 사회 복지를 포함하여 자신과 가족의 평안한 생활에 필요한 것을 향유할 권리가 있으며;그리고 실업, 질병, 장애, 미망인, 고령 또는 불가항력의 사고로 인해 생활할 수 없는 경우,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세계적인 기후 위기는 우리의 생활양식에 또 하나의 위협으로, 중대한 인권 위기가 되었습니다. 기후변동은 양식의 안전보장, 주거생활 또한 생명 자체에까지 위협을 주고 있습니다. 비록 작은 섬나라들은 다른 나라들보다 기후 변화가 미친 영향이 훨씬 적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기후 변화의 영향에 있어, 물리적으로는 가장 취약한 것으로, 이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매우 구체적인 위협이 되었습니다. 


모든 박물관은 기후 변화에 대한 인식을 높여, 행동 조치를 해야만 하는 책임을 갖고 있으며, 특히 과학자들은 '탈진실' 의 세계에서 과학적 사실을 지켜야 하며, 박물관들이  그 증거의 수호신으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제가 호주의 태즈매니아에 있는퀸빅토리아박물관 및 갤러리((Queen Victoria Museum and Gallery,약칭QVMAG))에서 관장으로 일할 때, 우리 과학자들이 동물(곤충)들이 지구 온난화 환경으로 인해 점차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증거와 동시에 현지의 주관기관이 ‘기후 위기가 임박’했다고 선포하면서, 우리 박물관은 기후변화를 핵심적인 초점으로 결정하였습니다.[3]

그러나 이것은 아카이브에만 의존한 지식과 증거로는 불충분함으로, 직접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였습니다. 2020년 초 런던의 호니먼박물관(Horniman Museum and Gardens)에서는 기후변동 선언을 통과하여, 사람들의 인식을 높이고행위를 변화시키기 위한 관람객과의 협력에 초점을 두었으며, 박물관 자체의 관습이나 활동 등도 점검하도록 했습니다.

기후 변화에 대하여 박물관은 어떻게 기여할까에 대하여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합니다. 박물관이 지니고 있는 자원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지금부터라도 지속할 수 있는 건물을 계획하고 있습니까? 박물관의 후원자들은 박물관의 가치관을 인정하였는지? 최근 한 석유 회사가 박물관에 자금을 지원하는 논의를 함에 있어, 이사회에서 하지 않고, 공공장소에서 진행하였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난민들의 수요는 또 어떻습니까? 이것은 앞으로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지금 이미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2020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3,070만 명이 실향민이 되었고, 그중 98%가 이상 기후로 인한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4] 수천 명의 마샬제도 주민들이 미국의 일부 지역에 안치되었으며, 그곳에서 그들의 문화와 전통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하는 새로운 도전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세계인권선언 제7조

법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법의 보호를 평등하게 받을 권리를 가지며 차별시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이 선언에 대한 차별 또는 선동적 행위로 인한 피해로부터 평등하게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유색인종에 대한 경찰의 무력 사용은 세계적인 항의를 불러일으켰고 “Black Lives Matter” 운동을 부활시키기도 했습니다. 잔혹한 경찰 폭력에 주목하여 시작된 이 운동은 그 후 전 세계적인 반응과 함께 제도적 인종주의와 식민주의의 여파 등의 이슈로확대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박물관의 과거와 행동에 대하여 더욱 명확한 조명을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박물관의 관행적 측면을 문제시하는 것도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198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면, 대영 박물관을 향해,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을 그리스로 반환하라는 공식 요청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예술 역사학자인 모리스버거는 1990년대에 “미술관이 인종 차별주의자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진 적도 있었으나 지금처럼 이러한 이슈들이 시대적 정신을 타고 불어 들어온 적은 없었습니다.

마치 반식민 운동으로 유명한 “Decolonize This Place” 또는 영국 석유회사 BP브리티시를 채택할 것이냐 아니냐 하는 ”BP or not BP” 의 운동 단체는 연출식의 개입 방식을 통해서 박물관의 공간을 인수하여, 박물관의 자금조달·물품반환·컬렉숀의 취득방법·원주민족의 능동성 및 작업상황에 대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주목하게 하였습니다. Vice미디어사로 부터 제작된《필터링되지 않은 역사투어(The Unfiltered History Tour) 》프로그램에서는 대영 박물관의 “분쟁의 여지가 있는 유물”에 대한 이야기를탐구하였습니다.[5] 근래에 와서는 캐나다 인권 박물관을 포함하여 여러 문화 기관의 전직 직원들이 직장 불평등과 구조적 인종 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낸 것도 정말 끔찍한 아이러니입니다.

문물의 출처를 찾는 공동체 “소스 커뮤니티(source communities)”로 부터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스터섬의 라파누이(Rapa Nui)후손들은 자신들의 조상(투푸나)을 뜻하는 호아 하카나나이아(Hoa Hakananai'a)의 모아이 석상의 반환을 요청하기 위해, 2018년 대영 박물관을 방문했습니다. 이스터 섬의 후손이자 주지사인 Talita Rapu씨는 호아 하카나나이아의 식민 약탈에 대하여 이처럼 신랄히 말하였습니다.

 “라파누이족에게는 몸뚱이만 있을 뿐, 영혼은 당신들 손에 있습니다. 우리는 영혼이 없이 텅 빈 몸으로 세상 속에서 걷고 있습니다.”[6]  토착민 소장품을 연구해 본 많은 연구자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문물들이 지닌 정신은 그들의 종족이나 그들의 가족 그리고 그 후손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 무슨 이유로 이것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있습니까? 전통적 소유권자가 “육체와 영혼”의 재회가 최선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박물관이 무슨 입장에서 그들과 언쟁을 하겠습니까? 우리에게식민주의의 관행을 떼어내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없다면, 우리에게도 그 결과를 악화시킨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유엔의 원주민 권리선언 제3조

우리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으며, 우리의 경제와 사회 그리고 문화발전을 추구할 수 있다.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글을 쓰면서, 제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에는 연방 국가 수준의 ‘권리장전 (Bill of Rights)’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호주에서는 주별로 시민의 인권 보장을 위해, 인권 옹호에 대한 책임을 개인과 조직에 부여하고는 있습니다. 생각보다는 만족스럽지 않습니다만. 한편 저는 나름대로 새로운 문화적 실체를 다지고 있었는데, 그것이 호주의 국립원주민미술관으로, 노던 테리토리의 앨리스 스프링스에 건설될 예정이었습니다. 이곳은 아름다운 곳이었으나, 충돌이 공존하여 독특한 문화와 예술과 함께 세대 간의 불이익과 트라우마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호주의 원주민족[7]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존속되어 지금까지 내려온 문화로, 특히 그들의 비주얼 문화는 시들지 않고 계속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원주민의 예술이 모래알이나 암석에서 화판이나 캔버스로 이전되었을 때, 호주 예술의 역사적 궤적은돌이킬 수 없이 바뀌었고, 전 세계 관객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예술가들과 그들의 공동체 모두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정신적으로 이로 인한 혜택을 받게 되었고, 원주민들의 이야기와 역사를 새로운 청중에게 소개하는 문화적 연결을 강화해 주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지금 제집과 같은 존재가 된 노던 테리토리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생명력이 넘치는 미술관이며, 무시할 수 없는 예술적 창작력을 가진 곳입니다.

노던 테리토리는 호주에서 원주민과 토레스해협 섬주민들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여 전체 원주민 가구의 약 45%가빈곤선 이하에서 살고 있습니다.[8] 젊은이들의 자살률은 전국의 평균 3배로,[9]  노던 테리토리의 교도소에 갇힌 사람들의 85%가 원주민들입니다.[10]

그래서 항상 우리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국립 원주민 미술관(National Aboriginal Gallery)과 같은 박물관(이 문제에 있어, 다른 박물관도 마찬가지로)이 인권을 위해 싸워야 할 것인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만 인권을 위해 싸울 수 있는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미를 찾아내고 의미를 창조하려면, 다시 한번 새롭게 우리의 생태계를 상상하고 재설계해야 할 것입니다. 국립원주민박물관으로서 이것은 원주민들의 원칙을 굳건하게 지켜며, 그들의  거버넌스, 관리 및 인력에 있어도, 원주민들이 대거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으로, 그들이 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고 주동적이며 권리와 책임을 공유하여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호주가 과거로부터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전 국민적인 화해로 향해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일반적인 갤러리/박물관의 패러다임으로 하는 식은 이것을 달성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글에 서술된 글로벌 이벤트나 인권문제에 있어, 박물관의 규모나 위치 또는 목적과 관계없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 피할 길이 없습니다. 대다수의 문화기관은 항상 관중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왔으며 관중들을 중심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또 그러한 사고가 아주 큰 유익을 가져와 더 소통할 수 있었고, 더욱더 중점에 적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 단계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을 우선시해서, 모든 사람의 인권과 존엄성을 지켜주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는 관점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림 1:사람의 권리. 인간의 가치.

그림 1:사람의 권리. 인간의 가치.

[1] 인권박물관 | CAMD – 웹사이트 공개

[2]박물관의 새로운 정의를 제정: 250개 이상의 제안서 보기!——국제 박물관협회——국제박물관협회(icom.museum)

[3]론서스턴(Launceston)시가 선포한「기후위기」——론서스턴시

[4]환경 이민 통계자료(migrationdataportal.org)

[5]Acast《필터링되지 않은 역사 투어》프로그램

[6]《필터링되지 않은 역사 투어》Hoa Hakananai'a | Podbay팟캐스트 프로그램

[7]호주 헌법은 현재 원주민과 토레스해협의 섬 주민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므로 이들을 원주민으로 인정하지 않음.

[8]18호 제출건—노던 테리토리 사회복지 위원회 (NTCOSS) —노던 테리토리 아동지출—위탁연구 (pc.gov.au)

[9]노던 테리토리지의 자살 예방 연구(missionaustralia.com.au)

[10]노던 테리토리, 원주민 수감율을 줄이기 위한 원주민 사법협상— ABC News